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흔히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서 다루는 책, 사람들은 웬만하면 '정의'를 찾는다. 실제로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각자 자신은 대부분 정의롭다고 믿고, 또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작 이 책에서 다루는 정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정의와는 다르다. 도덕, 윤리 그리고 정의 모든 것을 함의하여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정의는 법과 연결되지만, 현재 사법제도로는 세세한 부분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다수가 진정한 '정의'라고 믿고 지켜나갈 수 있는 개념에 대해서 샌델은 말하고 있다. 아직도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의란 무엇일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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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정의
앞서 말했 듯 샌델은 도덕, 윤리 그리고 정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어떤 포괄적 개념에서의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표현하면 이는 '도덕적 관념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주의'라고 말해 볼 수 있겠다. 뭐 간단히 말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도 해악이 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는 이러한 분위기가 당연히 되는 사회일 것이며, 대다수가 원하는 사회라고도 생각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것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만은 이 행렬에서 이탈하여 사리사욕을 챙기고 싶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에 입각하여 정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정의라는 범주를 사법적인(일부 기득권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로만 다루기를 원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에 의해 정의된 정의를 따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바라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의 곧 정의가 되는 세상을 갈망하고 따르며 산다. 정작 자신은 돈이 없으면서 말이다. 나라고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만은, 적어도 근본을 잃지 않고, 스스로 확립한 자신의 정의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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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쫓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는 주장.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주장이지만, 정작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의 어둠운 이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사고 실험'으로 가장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가 있다. 간단히 이를 설명하자면, 두 선로에 사람들이 누워있고, 사람을 가득 채운 열차가 두 선로 중 한 곳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고, 당신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와 관련된 여러 실험적인 상황을 통해 사람을 괴롭히는(?) 질문이다. 상황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기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인용되는 사고 실험이다. 솔직히 말하면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주체가 될 경우에 익명의 다수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수 있기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인간이 어떤 부분에서 고민과 갈등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에 가깝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예로 들자면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죄수들이 탄 배와 시민들이 탄 배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그려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 배에 탑승한 인원들의 행동과 결정은 '과연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부분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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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과 모병
한국은 휴전상태의 분쟁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징병제를 도입하여 젊은 청년들의 삶을 갈아 넣으면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공기처럼 익숙해져서 이들의 처우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당사자의 가족이나 관계자만 빼고. 정작 사람들은 군인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지출이 증가하는 것 또한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들 군인의 처우개선 및 고생에 대해서 염려하는 척하면서도, 당장 군입월급 최저임금 기준 적용을 위해 특별 세비 확보를 한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발광할 것이다. 뭐 할 말이 많은데, 쓰기 싫어졌다.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니,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군대를 다녀오거나, 혹은 가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제발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말로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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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격차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으로 세계가 시끄럽다. 뭐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온갖 부작용으로 범벅이 되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을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쓰는 듯 하지만, 그 의도나 방법이 너무 저열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문학, 게임 문화 분야의 많은 부분에 이러한 것들이 암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에 이미 확고히 생성되어있는 캐릭터를 갑자기 설정상으로 PC 하게 바꿔버리면, 그것을 보는 소비자들이 "아 그래 좋아"라고 할까? (사실 꽤나 흡족해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듯하다.) 시나리오 자체가 그렇게 의도되어 완성도 있는 이야기가 된다면 누가 그 작품을 무시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부족한 능력을 덮고, 사회적 이슈로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 행태가 꼴사납기 그지없다. 이러한 쇼맨십을 보이기 이전에, 정말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길 바란다.
최근에 보게 된 뉴스 중 미국에서 흑인 및 유색인종들에게 부여되는 대학 가산점제와 관련된 이슈가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상자에서 동양인이 배제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더 소수인종인 동양인들이 유색인종으로 분류되지 않아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위한 권리이며 차별인가? 결국 전 세계 어디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현재의 권리를 절대 놓으려 하지 않기에 실질적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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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참여정치
결론적으로 샌델은 도덕적 참여정치를 이룩하여 전체 사회의 안전/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 바른가에 대해서는 뭐라고 확단할 수는 없지만, 이미 명목상의 민주주의 사회는 이뤄졌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런 상황에 맞는 과거 우리 민족이 행했던 서민들의 삶의 방식이었던 공동체주의를 다시 현대시대에 재현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이상적인 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패한 기득권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이상론이자 낙관론일 수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끝은 결국 사람을 돈이라는 이름의 정의로 재단하고, 분열시킬 것이다. 그 이전에 우리는 각자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부터 작은 변화를 실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또 글을 쓰면서 정의라는 것은 참 이질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모두 그것을 갈망하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순간의 통쾌함을 느낀 뒤 찾아올 변치 않는 세상에 이미 순응해버린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각자가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일이다. 다만, 그 스스로의 선택이 자신에게나, 주변에게나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연속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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