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 영화

[책]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P.하루 2020. 12. 11. 10:00
반응형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떠오르는 신예작가 김 초엽의 차기작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이상현상에 의해 종말을 맞이 할 뻔하다가 재건된 세계.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실마리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서사로 구성되어있다. 소재나 나 짜임새는 특별하다는 느낌은 도입부를 제외하면 크게 들지 않았다.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비해 임팩트와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장편소설을 다루면서 이야기가 살짝 늘어진 느낌이 있어서였으리라. 그래도 작품이 가지는 흡인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라서, 금세 읽을 수 있었다. 향후 나올 작품들도 기대해 볼만한 작가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작품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구 끝의 온실 - 더스트 폴

  • 디스토피아

     개인적으로 디스토피아를 다룬 세계관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구 끝의 온실> 은 엄밀히 말하면 디스토피아 이후 재건된 세계를 다루고 있기에 조금 다른 편이긴 하지만, 종말이 다가올 때 나타나는 여러 인간 군상의 본능에 충실한 행동들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어떤 즐거움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작품 중 종말을 야기한 사건은 "더스트 폴"이었다. 왠지 과학 연구 중 중대한 실수로 인해 발생한 인재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다. 내가 이런 유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접해서 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플롯이 지나치게 한정되어있는 탓인지.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인류는 '더스트 폴'을 극복했다. 아니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인류의 부모세대는 그들의 인간성을 포기한 대가로 생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과연 또 다른 '더스트 폴'을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지구 끝의 온실 - 온실

  • 돔, 대안시설 그리고 온실

     '더스트 폴' 이 일어나고 세계는 몇 종류의 생존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돔'은 기득권들을 위한 세상으로 건설되었고 약자들에 대한 가해자이거나 방관자들로 주로 구성되어있다. 돔의 주민들은 약자들을 돔 밖으로 쫓아내는 걸로도 모자라서, 끊임없이 약탈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돔 거주민들이 후대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은 분개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나저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대안시설' 돔으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소규모 마을을 건설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예상했듯 파괴되거나 와해되고 만다. 돔 바깥의 열악한 조건에서 장기간 생존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에 가깝다. '약자' 들로 구성된 바깥 대안시설에서도 결국 강자와 약자로 새로 나뉘게 되고, 결국 누군가는 다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세태를 표현해내어 씁쓸하지만 핵심을 파고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온실' 온실은 곧 희망과도 같다. 온실 옆의 숲 속 시설이 마을로 성장하고 건재할 수 있었던 것들 어쩌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자, 종교와도 같이 모두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철에 의해 '중화제'가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다른 곳보다 엄청난 이점을 지닌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람들이 서로의 계급을 나누지 않은 것은 이미 계급화된 사회가 구성되어있었고, 주민들은 그것에 순응했기에 그곳이 남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구 끝의 온실

  • 내성종은 모두 여성?

     처음에는 그냥 작품 설정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부분이다. 여성이 '더스트'에 내성을 보인다.라는 설정. 그로 인해 여성은 돔 밖으로, 기존의 사회로부터 격리당하고 핍박당하지만,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끝내 답을 찾아내서 세계를 구하는데 일조한다는 설정. 딱히 성별을 확실히 구분 짓지는 않았지만, 작품 내 사용된 표현들을 통해 사냥꾼이자 가해자는 남성 내성 종이자 피해자는 여성으로 이분법화 되어 인식되도록 교묘하게 장치를 해두었다. (그 와중에 동성애적 요소도 살짝 가미되어있다). 더욱이 따로 여성만이 '더스트'에 내성을 가지는 이유도 모호하다. '사회적 차별의 대상' 으로서의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여성의 우월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강한 남성성은 여성을 성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뭐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 이는 사회적 주류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남성' 이기에 이성인 '여성'을 취하는 것이다. (소수자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면 그 사회적 강자는 같은 성별인 남성을 인격적으로 대하거나 존중해주는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 힘이 있다면 찍어낼 것이고 힘이 없다면 널리고 널린 잡초 와도 같은 존재로 무시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더스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힘을 휘두른다. 사회 혼란의 과정에서 '힘없는 여성'은 그들보다 조금 강한 '남성'으로부터 자신들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난다. 우. 연. 히. 내성종은 여성인 경우가 많고, 돔 외부에서 살아난 사람들도 자연스레 여성들이 많다. 세계의 종말을 막아내는 것도 여성이다. 얼핏 보면 그냥 설정상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린 의도를 해석해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소수자들의 이야기라는 내용을 봤기 때문이다] 대놓고 얘기한 적은 없다. 결국 돌고 돌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본데, 이 작가는 93년생이다. 나는 우리 세대의 또래 여성들이 같은 사회를 살아오면서 어떤 차별과 억압을 받아왔기에 페미니즘에 열광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진짜 한번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싶다. 작품을 다 읽고 이런 설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뭐 어쩌겠는가 이 시대에 남자로 태어난 게 원죄인 것을..  

 

  • 인간의 감정

    인간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작품상에서는 인간의 몸(사이보그 중 인체 비율)을 점차 잃어가는 과정에서 뇌 부분의 유기물 찌꺼기와 전자 칩을 통해서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명백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였지만, 작중 화자의 발화 시점이 상당히 지나버려 정확한 원인을 스스로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처음에 무엇으로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인체가 유기체인 이상 항상성에 의해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란 특이성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그것이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다시 또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고 쌓여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비밀을 파헤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의 감정 또한 세포 사이의 전기적 반응에 의한 부산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설령 그렇게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의지'의 노예이니까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 자연과 인간, 진화 그리고 생존

     인간은 자연을 훼손시킨다. 그러면 인간 외의 생물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변화된 자연에 맞게 생존한다. 다시 그렇게 변화된 자연은 인간에게 다시 영향을 준다. 이렇게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에 가깝다. 작품으로 돌아가 보면, 인간은 '더스트 폴'을 일으켰고 대부분의 생물들은 절멸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내성종과 같은 변형체가 생겨나고 그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그들이 결국 '모스바나'를 만들어 내고 곧 '더스트 폴'을 종식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양해진 생태계에 의해 '모스바나'는 그 역할을 다하고 종의 쇠태를 겪는다. 결국 자연은 대순환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을 담고 있다. 

     실제 세계는 어떨까, 인류는 난개발을 서슴없이 자행하면서 말로만 환경을 외치고 있다. 실제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구 자연주기에 따라 자연스러운 온도 상승이라고도 하지만, 이례적인 상승 속도 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실질적인 대처방안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자원절약, 대체제 활용을 해봐야 미국/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생에 중에 환경파괴에 의한 재앙으로 디스토피아에 준하는 위허이 닥칠 것만 같다. 물론 지금도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미증유의 재앙으로 전 세계가 골머리를 겪고 있지만, 앞으로 또 다른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상 대책이라 할 것도 없다. 내가 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결국 언제나 그렇듯 닥치고 나서야 뭔가를 바꿔보려 할 것이다. 각자 대비를 잘하는 수밖에. 

 

 정말 재미있게 읽고 나서 외부요인들에 의해 기분이 찝찝해진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작품은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모름 페미니즘 색 덮이기에 의해 심히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사회를 투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일그러진 사회를 비추다가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문학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싸한 느낌과 함께 혹시나 싶어 이 글을 쓰다가, 몇 개의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냥 '진짜'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엘리트도 아니고 어찌 보면 사회 중간계층에 가깝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성들은 어느 계층에 속하는 것과 별개로 다들 페미니즘에 미쳐있는 거 같은지 의문스럽다. 내가 알 수 없는 40대 이후의 여성분들의 세상은 내가 알 수 없으니 차치하고, 대다수의 젊은 여성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살아온 세상이 다른가? 남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로 이미 기득권이 된 것인가? 벡 번 양보해서 실제 엘리트 사회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대다수의 남자들의 그것을 허락지 않을 수 있으니, 근데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당신들을 밀어 내린것이 '여성'이라는 한계점 때문이었는지, 당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또 진정 '여성'임으로 인해 차별받은 일이 있었는지 한번 구체화해보기를 바란다. 

 솔직히 나도 남자지만 대다수의 남자들이 부끄럽고 한심할 때가 많다. 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정상인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 전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몇몇 아니 어쩌면 대다수일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싸잡혀 매도당하는 것은 당신들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라.

 옛 시대를 살았던 '여성' 분들이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내가 알 수 없는 시대적 환경에 살았기 때문에 작금의 세태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무엇이 그들을 불편케 했는지도 모를 젊은 여자들 중 '이퀄리즘'을 논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들은 믿고 거르는 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이로운 듯하다. 그래도 세상은 대다수의 '정상인'들로 구성돼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끼리가 아니라 저 위에 앉아서 웃고 있는 진짜 기득권들임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  

"희망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상승할 때는 의미가 있지만, 
다 같이 처박히고 있을 때는, 
그저 마음의 낭비인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