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 로셀라 포스토리노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으로, 나치 치하의 만행을 당시 독일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독일 동부지역 외곽에서 일어나는 잔악한 학살의 현장과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지 않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로자'의 시선을 통해 각자가 주어진 시대적 환경에 적응하며, 자발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압제 속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섬세한 내적 감정 변화를 표현하고 있으며, 전쟁의 참상이 부른, 또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이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세밀히 표현한 작품이라 느껴졌다.
- 독일 시민
순수 독일 시민들에게 있어서, 나치의 득세는 기회와도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먼 곳의 유대인 학살과 전쟁에는 독일인들의 처우 개선과 '아리아인'이 우수한 인종이다라는 극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직, 간접적인 동조를 했다고 보인다. 물론 폭력에 의한 강제적인 동원이 대다수였을 수 있겠지만, 모두가 공범자에 가까웠기에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중 '로자'는 이 시절에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한(?) 성품을 지녔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생각해볼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작품에서는 히틀러의 독재 이후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묘사는 그냥 뛰어넘어버리고, 살아남은 사람도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부분만 묘사되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사견이지만 독일 시민들은 전후처리를 정말 지혜롭게 잘 대처했다. (2번째여서 보다 현명해졌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진심이든 형식적이든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배상을 하면서 실리적 이익을 꽤나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도 보상도, 위로도 받지 못한 체 죽음으로써 잊힌 소수민족, 약자와 그 후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 아돌프 히틀러
시대가 낳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도 했고, 현대에서 평가하기에 역사적으로 최악의 행동을 저질러서 아직까지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큼 신비스러운 인물이기도 하기에 여전히 핫(?)한 인물로 여러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그려졌을 수 있겠지만, 작품 중 보이는 모습으로는 어쩌다 성공한(?) 찌질이로 보이는 인상이 강했다. 누구도 믿지 않으며, 의심이 많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훌륭히 연기한 사람. 그렇기에 더욱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히틀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물론 희대의 악인이자,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지른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행적과 처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히틀러라는 인물을 탐구해본다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행동은 잘못되었고,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는 전혀 이견이 없다.
- 정조를 잃은 여인들 그리고 불륜
최근에 '결혼의 종말'을 읽고 나서 인지,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쟁터로 떠난 남편 '그레고어' 그로 인해 남겨진 체 또 다른 전장과도 같은 곳에서 생존해야 했던 '로자' 비단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들 중 일부는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도피처로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음으로 이뤄진 일으로 치부되겠지만, 잘못된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졌는가? 대가를 치렀는가?. 알량한 스스로의 죄의식과 고통을 겪었으므로 그들은 용서받거나 구원받아 마땅한가? 이미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이 욕망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럼에도 그런 사실이 죄인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불륜하는 것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크게 화를 입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사정? 개나 줘버리라지. 제일 악질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 죄의식과 죄책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낄까? 이에 앞서 죄책감과 죄의식을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죄의식'은 특정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서 '죄를 느끼는 마음'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떠한 행동을 해도 괜찮을까? 또는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와 같이 특정 결과에 대한 의식의 수준 또는 척도를 의미한다. '죄책감'은 이런 '죄의식'보다 상위 개념으로 죄를 인식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감정 정도로 표현해보고 싶다.
<죄의식> - '죄' 여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
<죄책감> - '죄' 임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고 이미 행동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책임감.
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정확히 사전적으로 정의되어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특정 종교에서 이 '죄의식'을 다루면서 '죄책감'을 덜어주는 짓거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성황리에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스스로 그 죗값을 치러야지. 왜 엄한 곳에서 풀어주고, 감사하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작품 속에서 대부분의 독일 시민들은 죄의식 단계에서 머물러있다고 볼 수 있다.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하든, 소련과 전쟁을 하든, 다른 나라를 침략하든 자신이 직접적으로 행하지 않았기에 사실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 하지만 이야기가 고조되면서, 어찌 보면 자신들의 별것 아닌 실수나 작은 해프닝이었는데도. 누군가는 사회에 만연한 공포와 폭력으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뽑혀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에 빠지게 되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이러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를 그대로 덮어두고 자기 합리화하며, 더욱 많은 실수와 죄를 만들곤 한다. 물론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자기 합리화 및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후에라도 착한 사람인 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부분이 우리 사회가 나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 로자와 엘프리데
둘의 관계가 무척이나 모호하면서도 애틋했다. 나름의 반전도 가미되어 작품 전체에 신선함과 호기심을 제공했던 '엘프리데'가 이 비극적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에 반해 '로자'는 정말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로 보였다. 물론 그녀가 가진 환경에 적응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나치 시대를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능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말까지도 사실 무엇을 크게 바꾸었거나, 살아남은 대가를 치렀는지도 모르겠다. 뭐 어찌 보면 그녀도 단지 피해자 일뿐이라는 동정도 들기도 하지만, 조금은 씁쓸함이 남았다.
작품 초반부 채혈 장면에서 '로자'가 빤히 쳐다본 것을 보고 '엘프리데'가 한 말이 정말 이 작품 전체를 함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별생각 없이 보다가 큰 충격을 먹었고, 결국 나도 '로자'와 다를 것 없는 한 사람이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치고 올라왔다. 우리는 늘 타인의 삶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 애써왔다. 나 또한 그들을 냉소할 뿐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더욱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히틀러가 일으킨 2차대전은 너무도 참혹했지만, 그 결과 인간은 많은 것을 배운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그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홀로코스트'가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며, 그 이후 인류가 해온 것들, 나아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반면교사 할 수 있는 극적인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지만, 이제는 그 바보짓을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내가 무엇을 하든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이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인간임을
완전히 망각해야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