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명성황후> 이래저래 말이 많은 민비에 대한 이야기라서 관람하기 살짝 꺼려진 부분도 있었으나, 결국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람하게 되었다. (사실은 김소현 배우님 보고 싶어서)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솔직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한국의 멋과 미를 알리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고, 서사 부분에서도 작위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넘버의 빈약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노래 전달력이 너무 떨어져서 사실상 무슨 내용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웠다. 또한 넘버들이 임팩트 있는 노래가 몇 안된다. 메인 타이틀곡이라고 할 만한 노래가 있어야 하는데, 다 보고 나서도 무언가 선명히 기억에 남는 노래는 없었다. 김소현 배우님이 아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구성되어있는 넘버들로도 배우님의 가창력은 우월했다. 다만 많이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또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원근을 고려한 무대 경사로, 한복의 아름다움, 한국스러움이 다분히 묻어있는 장치들은 눈여겨 볼만 했다. 전반적인 평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듯 하나. 개인적으로는 김소현 배우님의 노래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라 인상 깊은 공연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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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
공연을 보고 혹시나 저런 모습이 있었던가 하고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우선 내가 찾은 사료들로는 민비가 국민들을 아끼고, 나라를 생각해서 행동했던 무언가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자리보전과 권력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주변 상황을 몹시 잘 활용하는 부분들이 기록되어있다. 시대적 상황에서 여인임에도 권모술수에 능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나, 그것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한 부분은 그녀가 민족의 반역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은, 그녀를 구국의 위인으로 삼고 자하는 주 축들은 민 씨 일가. 즉 그녀의 후손들이 대거 참여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막상 그녀는 일제의 침탈의 방해물이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당장 그녀의 후손들은 친일파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물론 심도 있게 찾아본 자료는 아니기엔 확단할 수는 없지만, 단지 그들은 권력의 개로 살아왔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들의 친일로 얼룩직 역사적 오명을 조금이라도 더 덮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괜히 흥분(?)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김소현 배우님이 연기한 명성황후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저런 명성황후라면 고종이 꽉 잡혀 바보 같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을 듯..)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계속될 정도로 굉장했다. 앞으로 배우님이 나오는 모든 공연을 챙겨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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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과 고종
사실 어찌 보면, 세도정치의 또 다른 수혜자로서 왕권을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지나치게 쇄국정책을 펼친 대원군과,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고종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물론 당시 국제정세가 너무도 혼란하고, 제대로 된 입지를 갖출 시간 조차 없었던 것에는 동의하지만, 오히려 정치적 능력면에서는 민비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정치적인 위치와 개인적인 위업 달성을 위해 나라를 동강 내놓았다는 역사적 결과물은 그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작품 중에서도 고종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역할로 등장하고, 대원군은 고집불통에 자신의 영향력 자체에 취해 살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인물을 연기한 배우분들 모두 뛰어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노래 부르는 순간만큼은 무대를 압도했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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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의 호위무사, 홍계훈
민비와 홍계훈의 관계는 정사로 딱히 두드러지게 나온 것은 없으나, 그는 민비를 그림자처럼 언제나 지켜낸 듯하다. 그로 인해 초고속 승진도 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녀와 같은 날 일본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작품 자체만으로는 약간의 미묘한 기류를 볼 수 있었지만, 임오군란 당시 그녀를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도록 하는 동안 아무래도 남녀의 연정을 품었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신분에 의한 한계로 이뤄질 수 없지만, 분명 그런 미묘한 위기는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는 이미 이와 관련하여 2차 창작물(?) 같은 것도 왕성히 만들어져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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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 개화기
분명 한국사 자격증까지 획득한 상태임에도 너무 많이 까먹어서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인데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구 열강들이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고, 국 내외적으로 너무 많은 사건들이 일다 보니, 하나하나 정리되지 않고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더욱이 그 파란 속에서도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았던 민중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정말 중요한 시기에 막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은 역사적 사실이 너무도 개탄스럽다. 그때로부터 100여 년 넘게 지났을 뿐이지만 이렇게나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면 내심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요즘 국내 정세가 마치 개화기 시절의 혼란함 속으로 들어가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하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또 한 번의 치욕스러운 개화기를 맞이 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물론 그때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몹시 희박하지만, 사회적 양극화 현상과 대립 그리고 지도층의 부패 등을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사건이 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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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일본 쪽 작전명 여우사냥. 미우라 고로가 실행한 명성황후 시해 작전. 일본 낭인들이 가담했으면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으나 워낙 규모가 큰 사건이기에 목격자가 많아 결국 밝혀지게 된다. 치가 떨릴 만큼 화나는 사건이기도 하며, 아무리 민비가 국가와 국민들에게 누를 끼친 게 많다고 한들 그것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벌하여야 마땅한 부분이었으나(당시 시대상 불가능했겠지만) 자신들의 침탈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왕비를 처참히 살해하고 시체를 유린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반 인륜적인 짓이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일본 놈들 답 기도 한 이야기긴 하지만 역시 화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작품 중에서도 클라이맥스로 가는 부분이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보게 되었다. 다만,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하는 부분은 역시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분노가 일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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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넘버
- 백성이여 일어나라
막상 리뷰를 쓰다 보니 공연 리뷰가 아닌 역사 관련 리뷰가 되어버린 듯 하지만,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에 이렇게라도 개인적 견해를 밝히고 싶은 마음에 이리된듯하다. 내용이 억지로 미화된 부분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우리 민족성을 일깨우자는 취지 정도는 얇게나마.. 그런데 그마저도 민비가 떠드는 것이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앞서 말했듯 테마곡이 될 만한 넘버가 거의 없다. 본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면 부족함이 많은 듯하다. 물론 김소현 배우님의 존재만으로도 이 모든 것을 메꿀 정도로 대단했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홀이 정말 잘 만들어진 공연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