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블랙 쇼맨과 이름없는 마을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나름대로 믿고 보는 그의 작품이기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호흡이 다소 길어진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확실히 최신 트렌드를 잘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로 시끌벅적한 세상이지만 막상 작품에서 또 그것을 마주하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걸출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도 아직까지 식상하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와 그의 표현력은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듯하다. 전체 맥락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의 이야기와 다소 산만한 진행방식은 아쉬움이 남지만, 결국 작품 말미에 정리되어가며 나름대로의 교훈을 주는 그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 싫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게이고 작품은 사람이 죽어야(?) 맛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가마다 자신이 특출 나게 풀어나갈 수 있는 분야들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마술사
작품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면 '마술사'라는 직업은 정말 다재다능하게 느껴진다. 뛰어난 통찰력, 세심한 관찰력, 빠른 손재주, 훌륭한 연기에 친화적인 화술까지 고루 갖추어야 하는 직업이다. 결국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일상생활 혹은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이 열려있는 그러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내에서도 어지간한 형사보다 더욱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적인 인물로 ㅍ현되었다. (물론 희생자와 형제관계였기 때문에 단서로의 접근이 용이했던 부분들로 인해 정보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긴 했다) 다양한 오락거리와 발달된 과학 기술로 인해 이전만큼 세간의 집중을 받는 직업은 아니게 되었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짜 마술사처럼 화려하거나 멋진 무언가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그러한 자세나 태도만큼은 본받아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
- 동창회
일본 또한 집단 따돌림이라던가 여러 가지 일들로 덮어버리고 싶은 과거 학창 시절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의외로 이게 빈번히 이뤄지는 일인 듯하다. 물론 부모님 세대에서의 동창회는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겠지만, 이제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현실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만약에 동창회를 한다고 하면 궁금하기야 하겠지만, 굳이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과거에야 정말 연락할 길이 어렵기도 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기겠지만, 휴대전화가 발달된 요즘이야 정말 보고 싶던 동창이 있었다면 진즉 연락을 이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창회라는 신비의 공간에 꿈과 동경을 가질 수 있음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은 불륜, 과거의 구설수, 복수, 자기 자랑 등으로 얼룩진 현대판 지옥이라고도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제 와서 얼굴 봐서 좋을 일들이 있을까? 결국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을 텐데.
- 환뇌라비린스
떡밥은 어마어마하게 풀어냈지만, 정작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지만, 오히려 더 뭔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표현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있었던 일들, 고인이 되어버린 친구의 유작, 밝혀지는 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충분히 겁먹을 수 있고, 반쯤 미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사람이라는 게 워낙 복합적인 생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만은. 하긴 뭐 우리 사회도 성공에 대한 과한 집착과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에 오는 공포감 그리고 죄책감들로 인해 사건사고가 생기는 것들을 보면 가벼이 여길 부분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돌아가신 선생님만 안타깝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뭐 세간에 밝혀진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외적으로 증거가 남은 것과 별개로 친구와의 약속으로 진행했고, 그것에 대해서 조금 솔직하게 선생님께 이실직고했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학창 시절 교사에 대한 불신은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었다 하더라도 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이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극단적으로 튀어버리는 인물 상들을 보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연인의 과거
이야기의 본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져있다가 갑작스럽게 마무리된 부분이어서 뜬금없기는 했지만, 괜히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넣은 것 같다. 그만큼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들춰내 봐야 할 만한 불편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혹은 '괜찮지 않을까?' 하며 어쩌면 아플 수 있는 진실을 덮어두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애석히 도 대게 이런 고민들은 큰 후회로 남게 되는 경우가 빈번한 듯하다. 연인의 과거를 안다는 것은 굳이 불편한 골짜기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물론 아예 어떠한 과거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전혀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알게 된 후에야 짚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툴툴되며 장난기 가득한 '타케시' 지만 적어도 조카를 아끼는 마음은 작지 않았던 것 같다. 강제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두 사람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결정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타케시'처럼 좋은 어른을 가까이 두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직접 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뜬금없이 등장한 이야기이지만 혼자서 하고 있던 생각을 다시금 상기시켜줄 만큼 강렬한 내용이었다.
최근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대화문이라던가 서사 방식에 대해서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는데, 그저 '대단하다'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직접 작품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걸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빠른 속도로 찍어내다시피 하는 게이고의 실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책에서 봤던 하루키의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소고를 떠올려보면, 역시 그것은 재능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나도 이런 감상문과 같은 내 생각에 대한 글쓰기는 빠르게 써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게끔 쓰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이야기이다. 별생각 없었던 부분이지만, 이제와 그 재능이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진다. 뭐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니만 크 조급해하지는 않겠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