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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풀이 눕는다 - 김사과

P.하루 2021. 4. 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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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눕는다 - 김사과

김사과 작가의 <풀이 눕는다> 작품을 읽기 전에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었지만, 점입가경이라. 읽을수록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뒤를 이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한 주인공의 생각과 언행들이 묘하게 작품의 몰입감을 더해주고 있다. 비현실적인 인물에 가깝지만, 또 일부 비슷하다고 공감할만한 부분이 있는 입체적인 성격들이 새로운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내용에 대한 이해와 작품 전체의 서사와는 별개로 그냥 잘 읽히는 작품이라는 점 또한 새로웠다. 여러모로 참신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 성공한 형제자매

 형제자매 중 특출 나게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견디기 힘든 일이다. 물론 부모님이 참된 어른이시라, 자녀들의 능력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골고루 품어줄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부모님 또한 결국 사람인지라, 어느 한쪽이 차별받고, 비교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품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이상행동들도 그런 것에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정도는 좀 심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일반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둘째이자, 엄청 뛰어난 형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열등감 비슷한 어떤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어떤 벽. 그것에 스스로를 갉아먹히는 순간 결국 내게 정해진 길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 행복의 기준

 주인공의 삶을 보면서, '저렇게 살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모두 특별한 한 개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잊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이 노력의 방향이 대게는 잘못되어있다는 점이다. 실제 무언가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으로의 노력이 아닌, 현재 있는 그 상태에서 남 탓을 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주변 탓을 하게 되고, 종래에는 스스로의 파멸 혹은 주변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이다. 주인공에게 화가 난 부분은 정작 부족했던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 하려 하지 않고, 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여 기대는 것으로도 부족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라는 소위 '생떼'까지 부렸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맞춘 것도 개인의 선택이지만, 참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고, 주인공이 미워졌다.

 

  • 나 다움을 잃었던 시기

 각자에게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시기가 있는듯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불운과 불행이 쌓여서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을 때. 이제는 자포자기한 채로 방황했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빠져나오는 데는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게, 실패의 관성에 빠져 사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마치 작품 속 주인공처럼. 뭐 정확하게 무엇을 계기로 돌아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기어들어간 후에야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탈출한 듯하다.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로의 부름에 대한 유혹을 견뎌내고 살아야 한다. 내 속에 내가 아닌 무언가로 채워지기 싫다면 말이다. 

 

 엄청 잘 쓰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작품의 주인공이 왜 저렇게까지 되어버렸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 이리라. 어쩌면 우리는 다들 미쳐버릴 계기와 명분이 상황이 만들어지기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 주인공이 그랬듯, 폴이 그랬듯. 결국 남겨진 사람의 삶은 온전히 그 자신의 책임과 선택대로 살아가야 한다. 뭐 이미 내가 보기엔 주인공의 삶은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여, 조금의 연민은 느껴지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선택한 삶인 것을. 아마도 또 다른 폴을 만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작품이 내게 전해준 교훈은, 언제라도 우리는 폴 혹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심연에게 스스로를 잠식당하지 않도록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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