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프랑스 내한 공연 - 부산 KBS홀
세계 4대 뮤지컬 중 한 작품. 개인적으로는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완성도 높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가난 한 이들이 삶에서 겪는 부당함과 풍파, 각자의 신념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전체 적인 서사구조와 시사점 그리고 배경이 되는 시대까지 거의 완벽하게 짜인 구도가 만족스럽다. 이번 공연은 콘서트 형식으로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른 방식으로 복장을 갖추고 노래를 중심으로 풀어나가 진다. 원가절감을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와 관련하여 법적인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뭐 결국 '오리지널'이라는 말을 없앰으로써 논란을 종식하려고 한 듯한데, 치사하다고 느껴졌다. 어쨌든 공연 자체는 몹시 훌륭했고,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라 그런지 실력은 전반적으로 훌륭해서 귀가 호강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오케스트라 연주도 공연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서 여타 다른 공연에서 보다도 비중 있게 다뤄지며 노래와 조화를 이룬 점이 좋았다. 다만 불어 버전을 진행되어 노래의 호흡이나, 미묘히 다른 내용, 실수인지 기교인지 모를 그 무언가 들이 조금은 아쉬웠다. 또 중앙 객석을 위한 자막 스크린이 없어서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도 영어 버전의 노래와 스토리를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불어 버전 노래들을 나름대로 잘 즐길 수 있었다. 또 콘서트 형식으로 인해 생긴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른 뮤지컬의 넘버를 부른 앙코르 무대를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선과 악 그리고 신념
빵을 훔친 죄로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빵) 죄수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지만 그의 인생엔 죄수의 낙인이 찍혀 다시 끊임없는 박해를 받지만 교회의 주교로부터 새 인생을 살 기회를 부여받으면서 개심하게 된다. 이유야 어찌 됐건 결국 회개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어 의를 행하게 된다. 반면 자베르는 냉정한 교도관/경관으로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것에 있어 광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다만 당시의 법이 악법들로 구성되어있어 결과적으로 악인으로 묘사된다. 장발장 - 자베르 이 둘의 구도가 정말 잘 짜여있으며 대비되는 가치관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서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악인처럼 묘사되어있는 자베르가 안타깝게 느껴졌고. 단지 그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던 결과가 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끔 만들어진 잔혹한 현실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이러한 인물들의 배경을 바탕으로, 둘의 노래 실력도 단연 돋보였다. 로랑방의 장발장은 말 그대로 객석을 가들 정도의 울림이 있었고, 노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자베르의 경우에는 초중반 고지식한 인물에 맞는 느낌을 주다가 엔딩곡에서 그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러까지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그런 무대였다. 불어 가사다 직관적으로 가사가 와 닿지는 않았지만, 노래와 표정연기를 통해서 인물이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이 어떤지 간 적 접이지만, 또 격정적이게 느껴볼 수 있었다.
- 혁명 그리고 사랑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 불안한 사회 정세와 계층 간의 분열이 심화되어 혁명이 일어나는 세상임에도 사랑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던 듯하다. 영문판이나 뮤지컬 버전에서는 코제트를 좀 더 부각했다는 이미지가 들었는데, 오히려 본 공연에서는 에포닌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이 더 부각된 느낌이다. (중간에 삑사리 난 부분이 아쉬웠다)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다른 것이 다 무색 해질 정도로 초라해지며, 또 다르게 보자면 어떤 것으로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해내는 듯하다.
본 작품에서는 사랑이야기보다는 혁명에 분위기를 집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혁명의 주체들이 부르는 단체 합창이 유난히 감명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리우스의 사랑노래보다, 진정한 변화를 꿈꾸는 앙졸라의 외침이 더 좋았고 마음에 와 닿았다. 뭔가 사회변혁을 위해 모두가 하나 되는 마음을 가지는 모습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갈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정말 간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명 연출은 기가 막히게 보여준 듯하다.
- 형벌제도
범죄자들은 감화될 수 있을까? 솔직히 생활고 혹은 직접적 대인피해가 없는 경범죄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갱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게끔 현실을 바꾸어 주면 아마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범죄 이상의 것은 죄질이 나쁘고 아무래도 오랫동안 수용/감 생활을 하더라도 변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정립된 상황일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는 범죄의 경중에 따라 적법한 조치가 이뤄진다고 보기 어려웠고, 약자는 더 악독하고 괴롭게, 강자는 어지간한 일로는 처벌도 받지 않는 그런 편파적인 잣대로 법이 집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빵을 훔쳐 수감되었던 장발장, 주변인들의 모함과 음해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간 팡틴, 정작 나쁜 일을 일삼고 자신보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지만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테나르 디에 부부 어느 것 하나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 없고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들로 가득하던 시대였다. 하나 자신도 어렵고 힘든 과거 있었던 장발장은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미리엘 주교의 가르침대로 정의롭고, 약자들을 도우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정말 이상적인 인간의 성장과 선행을 보여주었다. 뮤지컬 형식으로 보았다면, 그런 장발장의 고뇌와 결단이 필요한 상황마다 독백처럼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에 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짜임새가 좋은 작품이다 보니 노래만으로도 그런 배경 상황을 이해하고 들으니 감동을 느끼며 감상할 수 있었다.
- 프랑스혁명
레미제라블의 무대 배경이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배경은 좀 더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루이 16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 이후에도 계급사회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과 역병으로 빈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혁명들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작품의 직접 배경인 프랑스 6월 봉기는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었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봉기했다. 다만 수적 열세와 구심점 와해로 인해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되지만, 그 이후에도 대를 이어서 계속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결과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프랑스혁명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프랑스는 제국주의의 태동 때 상당한 악행을 행하고 다닌 열강들 중 하나이다. 물론 국가와 개인을 한 데 모아 보기는 어려우나,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뭐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비운의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결국 베트남 전쟁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역사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냥 보통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다소 미흡한 부분 투성이 인 점도 많으나, 어찌 됐건 우리나라도 자발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역시 끊임없는 투쟁과 시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다. 프랑스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역사 속에서 속죄할 기회를 잃었고, 과거의 영광을 그들의 손으로 지워내고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를 속되게 표현하여 '유럽의 중국' 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다행히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현재 진행형 아래에 놓여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잘못된 사례를 반면교사하여 현재의 영광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내한 팀 너목보 출연분 (5:30부터) : https://www.youtube.com/watch?v=O_9wQ9B_l00
* 주요 넘버 (Les misérables (Paris, Thèâtre Mogador 1991)_자막 없음)
https://www.youtube.com/channel/UC0_o0yLAU9MZTRtvV3769YQ
- Le bagne : Pitié, pitié (Look down) - 수용소
- Pourquoi ai-je permis à cet homme (Valjean's soliloquy) - 장발장 탈주
- Quand un jour est passé (At the End of the Day) - 팡틴 추방
- J'avais rêvé (I dreamed a dream) - 팡틴 독백
- Le procès : Comment faire (Who am I) - 장발장 고뇌
- La mort de Fantine (Come to me / Fantine's Death) - 팡틴 죽음
- La confrontation (The confrontation) - 장발장 / 자베르
- Maître Thénardier (Master of the house) - 테나르디에
- Sous les étoiles (Stars) - 자베르 독백
- Rouge la flamme de la colère (Red and black) - 앙졸라 비밀결사
- A la volonté du peuple (Do you hear the people sing) - 군중 시위
- Le grand jour (One day more) - 혁명 전야
- Mon histoire (On my own) - 에포닌 독백
- Souviens-toi des jours passés (Drink with me) - 비밀결사 위로
- Comme un homme (Bring him home) - 장발장 마리우스
- Le suicide de Javert (Javert's Suicide) - 자베르 죽음
- Seul devant ces tables vides (Empty chairs at empty tables) - 마리우스 독백
- Final : C'est pour demain (Epilogue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 장발장 죽음
앙코르 무대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 Le temps des cathédrales (대성당들의 시대) - https://www.youtube.com/watch?v=VURvME8gqaU
- Bohèmienne (보헤미안) - https://www.youtube.com/watch?v=GqjM4uypLf0
- Belle (아름답다) - https://www.youtube.com/watch?v=Lefbtf5jjbg
* 뮤지컬 모차르트
- L'assasymphonie (악의 교향곡) - https://www.youtube.com/watch?v=rtKyq9YKKP8
*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 Les Rois Du MondeLes (세상의 왕들) - https://www.youtube.com/watch?v=Lk1rGk34mss
저작권 문제로 인해 관람이 조금 꺼려지기는 했으나, 객석을 가득 메운 인파는 그런 논란을 무색하게 했다. 법리해석상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 다지만, 차라리 정식 계약을 통해 뮤지컬로 공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당초 느낀 아쉬움을 무색하게 할 만큼 훌륭한 공연이었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과 ONE DAY MORE을 합창할 때 조명으로 프랑스 국기를 표현할 때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공연은 보기 드문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서 조용할 날 없는 날들이지만, 결국 승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는 세상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자유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