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 & 생활

[독서모임] 블랙 어스 - 알쓸주독2nd

P.하루 2020. 12. 6. 11:33
반응형

 

알쓸주독2nd - 블랙어스 20201206

 

Q. 작품 중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서 무감각해지기도 했다. 수에 대해 무감각해진 경험?
-> 현재 세계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확산세가 바로 그런 듯하다. 처음에야 저렇게나 늘어날 수 있나 하면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잘 보지도 않게 된다.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난 문제일 수 있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겪기 전까지 직접적으로 와 닿는 수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위해 보다 확실히 전달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Q. 현재의 자신이 저 시절의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면, 소련과 독일 중 한 곳을 택해야 했다면 어디를 택했겠는가?
->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시도해볼 수 있는 소련을 택하지 않았을까 한다. 내 친구, 가족의 원수가 되어버린 독일군에게 최대한의 반항과 타격을 입히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 소련에서도 그냥 죽을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Q. 폴란드인의 '메시아니즘'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비슷하게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가?
-> 사실 꽤나 자주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고통에 대한 보상이 언젠가는 있을 것이라고, 그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없다면 현재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뭐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확정적인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지는 않는다.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생겨날 것 같다. 


Q. 강압적으로 나치에 협조했던 이들의 처벌은 어디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겠지만, 자신의 죄를 다 이실직고하고 금전적, 정신적이든 그 유족이라던가, 관련된 재단에 뭔가 환원해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고는 했으나 결국 그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고아 가정에 물질, 정신적인 보상을 꾸준히 제공하도록 법적인 집행이 필요해 보인다. 나치 치하 스스로를 합리화했듯, 이번엔 그의 희생양이었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새로운 합리화를 시도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Q. 민족과 인종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결과적으로 발생되지 않았나? 물론 원시시대만 생각해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각자의 환경에 맞게 적응해오다 보니, 좀 더 치열히 경쟁했던 민족들은 그에 맞게 적응하여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우열이 아니라, 각 시대의 상황(자원, 과학, 환경, 위치, 종교, 정치 등)에 맞게 극대화될 수 있는 이점을 지닌 민족이 상대적인 우열을 가질 수는 있는 듯하다. 



Q. 간단한 감상평
->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읽은 느낌이다.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필요로 하는 배경지식이 너무 많아서 따라가기 벅차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완독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보다 넓어진 느낌이 든다. 막연히 느껴졌던 나치의 폭정과 홀로코스트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다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또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세계사의 흐름이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된 다른 분야로 한번 더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읽는 보람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Q. P167 폴란드 경찰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 싸움, 떠남, 일함 )
-> 어차피 나치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려질 위치였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자발적으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드느니,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치의 입김이 닿지 않을 곳으로 떠나기를 선택했을 듯하다. 더욱이 내 성격상 분명히 그들에게 찍혀서 1순위로 척결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빨리 피신하는 게 옳은 선택인 듯하다.


Q. 미래 어느 시점에 대한민국의 주권이 폴란드처럼 파괴되거나 사라진다면 어떤 이유 일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 내가 직접 겪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이와 유사한 역사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남북 대립-'박정희' , '전두환'의 독재. 책에서 설명하는 나치의 모든 만행들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활용했다는 것이 느껴져 소름 돋기도 하고, 치가 떨리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겪었기에 아무래도 만약 이런 역사가 반복되더라도 다른 양상을 띄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싶다.

 다시 질문으로 넘어가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무조건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통제불능의 중국이 어떻게 미쳐 날뛸지가 앞으로의 역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듯하다. 하루빨리 여러 개의 중국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 


Q. 만약 당신이 나치 독일 치하에 살았다면 생존을 위해 옆 집에 사는 유대인을 신고 했겠는가?
-> 아마 내 목숨이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별 수 없이 신고하지 않을까? 결국 남의 목숨보다는 내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수 독일인이었다면 그래도 봐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니, 더 위험할 수 있는 다른 이웃을 통해 신고하도록 유도할 것 같기도 하다. 살 확률이 높은 사람을 살리는 게 바람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절대 재산 갈취를 위해서 그들을 신고하지는 않을 것 같다. 



Q. 본인 혹은 가족의 생존이 조건이라면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겠는가?
-> 내 죄의식이 허락하는 수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직접적으로 그들을 죽이는 스위치를 누르라하면 하지 못하겠지만, 그것들을 위한 단계 중 하나를 실행한 것이었다면, 어차피 누구라도 했을 일이고, 나와 내 가족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별 수 없이 가담은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평생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Q. P353 쿠르트 트림보른 처럼 수백 명을 학살했지만 몇 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과 수는 적으나 한 명도 구한 적 없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는가?
-> 만약 한 명도 구한 적 없고, 학살에도 참여한 적 없다면, 그는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래도 몇 명의 목숨을 구 한 사람은 선처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누구라도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는 다른 것을 후순위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 아닐까? 아마도 트림보른 같은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그 죄를 자처해서 마음의 벌을 계속 받아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당신이 트림보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소년이었다면 전후 그를 위해 유리한 증언을 하겠는가?
-> 당연히 유리한 증언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가 어떤 사람이었건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유대인들이 날 비난하더라도 나는 사람의 도리 로날 살려준 이를 위해 선처를 빌 것이다. 

Q. P.26 유대인은 〈흑사병보다 더 나쁜 유행병, 정신적 유행병〉이었다. 유대인은 사상을 무기로 삼아 싸웠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도처에 퍼졌고 밖으로 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 누구라도 그들의 대리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역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1)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가 그들만의 사상이 원인이라고 보는가? 
-> 1차 대전 이후 독일은 사회구조 재편 및 전쟁보상금 지급 등으로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또한 그 상황 속에서 부유한 유대인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의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물론 유대인이 가지는 사상이 부의 축적에 탁월함을 보인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사상 자체가 유대인을 박해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국가재건을 위한 명분으로 이용당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2) 다른 사람과 생각과 견해가 다르다고 그들을 미워한적 있나? 
-> 사실 수시로 미워하는 듯 하다. 다만 굳이 내색해서 티 내거나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겪은 대부분의 나와 생각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선제적으로 자신들이 나를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 또한 그들을 좋아해 줄 이유가 없었기에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가끔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들이 날 미워한들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편이긴 하다. 
3)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인류가 다른 종을 멸종시키며 생존해왔다고 하는데 홀로코스트도 그런 태생적 유전인자로 발생한 것인가? 
-> 태생적 유전인자를 어디까지로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르긴하겠지만, 환경에 의해 분화된 민족/인종적 특징에 의해 어느 정도 발생할 여지를 두지 않았나 싶다. 보다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일도 저지를 수 있는 본능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에 위협이 되는 존재는 필요에 따라 제거될 수 있다. 홀로코스트 상황에서의 유대인은 다른 민족/인종보다 우수한 대상으로 여겨졌기에 모두에게 박해를 받은 듯하다. 

2. P.156 스탈린은 히틀러와 유럽의 동부를 나눠 갖기로 하면서 무력 충돌을 유럽의 서부로 돌리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상대해야 할 것이었다. ……스탈린의 전술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전쟁 수행 방법은 다른 이들이 서로 싸워 있는 대로 피를 흘리게 한 뒤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었다. 
>>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히틀러뿐만 아니라 스탈린도 홀로코스트에 준하는 학살이 자행되었고 영국도 자국의 식민지에 무자비한 학살이 있었다. 유독 히틀러만 역사를 되풀이해서 기록되는 것은 현재의 기득권이 유대인이 이유가 되지 않는가?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다른 피해자를 감추게 만드는 가해자인가? 
-> 제국주의시절 행해진 유럽인들의 만행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국가단위의 실질적인 보상] 사과를 행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디언,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유럽을 제외한 세계 어느 곳이든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다루려고 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인종차별과 같은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반면 유대인은 현재 완전한 기득권이고 세계경제의 중심[민족단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인들 대부분이 히틀러의 광기로 인해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나치의 패배로 인해 자신들의 과오 또한 그대로 덮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런 역사를 겪은 유대인들이 행하는 팔렌스타인에서의 만행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그들은 세상의 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3. P.176 독일인들은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할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을, 즉 처음으로 유대인을 대규모로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찾아냈다. 최종해결이 실현된 곳은 독일에 앞서 소련이 지배했던 곳, 소련이 두 대전 사이의 국가들을 파괴한 후 독일이 소련 제도를 폐지한 곳, 즉 이중 점령 지대였다. 
 >>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원인 제공의 상당수가 소련이 제공했다고 보여진다. 소련은 유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이 있었으나 회피했고 역사는 온전히 나치의 잘못으로만 남겨진 것이 옳은 일인가? 
->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제국주의의 아성이 무너지기 이전이었고, 각 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돈 없는 노동자는 자국민으로 보기 힘들긴 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나라 없고 유복한(일부긴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대부분이 이들을 노렸을 테고 결국 두 강대국이 그것을 원했기에 '홀로코스트'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소련은 연합군에 속했고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다시 쓰이기 마련이다.

4, P.293 〈아우슈비츠〉라는 낱말은 홀로코스트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법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유대인은 아우슈비츠가 주된 학살 시설이 될 때쯤이면 그 동쪽에서 이미 죽임을 당했다. 아우슈비츠는 기억되었지만, 홀로코스트의 대부분은 대체로 잊혔다. 
>> 아우슈비츠만 기억하는 것이 이후 제작된 여러 창작물(영화, 소설 등)의 결과라고 보면 더 끔찍한 학살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물일까? 논픽션일까? 당신이 기록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 논픽션을 가장한 사실주의 소설을 쓰고싶다. 1인칭 시점이 복수의 화자로 구성되어, 학살에 가담했던 자, 학살당한 사람, 양심을 저버린 자 등등. 실제 있었을 법한 사람들을 바탕으로 그 처참한 역사의 생동감을 구현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법과는 별개로 보다 좋은 전달과 기록을 위해서는 영상물로 제작되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리기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