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여러 생각을 해보게끔 했던 말이다.
뭐 간단히 설명하자면, 실제 시장에 유통되는 악화(주조, 도금된 화폐)가 양화(금화, 은화)를 잠식하여, 결국 시장에는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악화만이 유통되고, 자체로써도 가치가 있는 양화는 유통되지 않게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실제 많은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아마도 대다수가 회사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보고를 위한 보고자료와 업무가 늘어나다 보면, 결국 최초 그것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보고를 위한 보고라는 악화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내에서 업무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절대 부서에서 놔주지 않으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을 내보내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수가 악화에 대해 예의주시 하며, 악화가 증가되는 상황을 원천 차단하는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결국 본 말대로 양화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추가적인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뭐 그냥 혼자 생각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1. 전반의 조직/단체/경제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 너무 어려운 문제여서 감히 답을 내릴 수 없더라, 결국 다수에 의한 지속적인 경계와 문제 발생 순간마다의 적절한 조처라고 볼 수 있는데, 역시 개인이 아닌 다수의 집단 논리에 기대기엔 책임의 분배 문제가 너무 커서 어렵다고 생각된다. 또한 집단은 개인보다도 타락하기 쉽고, 그러한 집단에서의 개인의 일탈은 더더더 발생하기 쉽기에, 관리가 불가능한 영역이 아닐까 싶다. 결국 답은 없지만, 나라도 그 안일함에서 벗어나서 항상 지켜보고 경계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악화의 사이클 안에 넣어둔 체 유심히 보도록 해야겠다.
2. 악화와 양화의 기준은 확실히 진단할 수 있는가?.
-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가 보편화되어있는데, 이는 곧 악화를 자극하는 요소로 판단된다. 그 말인즉슨, 집단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이 이미 그 힘을 좋지 않게 쓰려고 한다면, 그로 인해 그 조직 전체는 악화의 고리에 빠져들어 있게 된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는 보통의 다수로 하여금, 악화의 발달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끔 만드는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 아니 적어도 그 당사자만큼은 각자의 합리성을 지니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인해, 최악의 악화인 주제에도, 스스로는 양화라고 착각하고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게 되는 것이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결국 답이 없다.
세상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게 바뀌는 것보다도 더 빠른 건 소수 기득권의 통치 방식이기 때문에, 변화를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느낀다.
결국 푸념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은 절대적 가치에서의 '악화'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 위해 이 소회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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