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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 없이 - 홍의정 감독

P.하루 2020. 11. 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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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 홍의정

 유아인, 유재명 주연의 범죄 휴먼 드라마. 범죄 조직의 시체 청소부로 일하는 두 주인공에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고, 진짜 범죄(?)에 가담하게 되어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려냈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 아이 같지 않은 아이, 범죄자 같지 않은 범죄자, 경찰 같지 않은 경찰.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씩 부족하고 엉성한 모습을 그리지만,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섭고 냉혹한 현실적인 그림이 잘 녹아들어 있다. 화려하거나 치밀한 구성을 띄는 작품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두 배우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몰입감 넘친다. 엉성하기에 더 멋졌던 어설프기에 더 현실적인. 작품 내내 모순적이고 대조적인 내용을 덤덤하게 담아낸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도 없이 - 유재명

  • 창복 [유재명]

 소심한 계란장수이자, 전형적인 하층 소시민. 그런 그가 조직의 시체 청소부로 일하는 일상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터무니없는 작은 보수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라는 자신의 신념을 어기다 끝내 그 자신도 과욕으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비밀의 숲,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배우 유재명의 연기에 푹 빠졌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웠고 디테일과 함께 엉성하면서도 코믹스러운 연기 또한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리도 없이 - 유아인

  • 태인 [유아인]

 후천적인 실어증(?)을 앓고 있는 청년. 살짝 부족한 듯 하지만, 작중 창복과 함께 묵묵히 시체 청소(?)를 한다. 몰래 고급차에서 담배를 피우는 폼도 잡아보고 싶어 하는 평범하지만 소외계층에 속한 청년이다. 뜻하지 않게 창복과 함께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에 휘말리고 각자의 욕심으로 인해 기존의 일상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다. 초희의 유대와 자신의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인간성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중간에 실장의 양복을 입고, 그에 맞는 사람으로서 살아보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지만 천성을 속일 수 없었고, 결국 옷을 벗어던지는 장면과 함께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극적인 장치가 아니었다 싶다. '분수에 맞게 살자'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역시 유아인의 약간 모자란듯한(?) 연기는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젊은 배우는 또 드물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 없는 대신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을 잘 소화했다고 느낀다.

 

소리도 없이 - 문승아

  • 초희 [문승아]

 아이 같지 않은 아이 모종의 이유로 납치당하는 아이, 처연할 정도로 안쓰러운 역할이기도 했다. 외톨이스러움을 한 없이 내뿜으면서, 그저 덤덤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냉정히 판단하는 것. 출연하는 캐릭터들 중 가장 어른스러웠던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숱한 위기에도 침착한 모습을 잃지 않았고 끝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짓는 씁쓸한 표정은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는 듯한 느낌도 비친다. 상황상 어쩔 수 없었지만, 안색 변화 하나 없이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어른들을 이용(?)하는 모습은 어쩌다 저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어린것이 요망하기 그지없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작중 화장실에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애는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태인에게 박수를 쳐달라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후에 태인이 우발적인 사고를 치고 당황할 때 반대로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고는 보통 아이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역전된 상황을 모순적 장치로써 정말 잘 활용한 듯하다. 

 

  • 역전된 시선

 시체는 처리하지만 나쁜 짓은 하지 않는 범죄자. 유괴와 인신매매에 대한 협상을 마치 마트에서 에누리하듯 이야기하는 덤덤함. 성범죄자 같은 진짜 경찰. 어른 같지 않은 어른, 아이 같지 않은 아이. 무엇인가 하나씩 부족하게끔 설정된 부족한 캐릭터들이다. 그럼에도 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가 캐릭터가 그려내는 장면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우리도 현실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일상과 비일상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고, 전형성을 파괴하는 참신함으로 느껴졌다.

 

 우연치 않은 이야기, 삶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때로는 자신에 선택에 의해서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나, 그 근원의 것이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것이라면 언제나 파국을 맞이하기 더 쉽다.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작품. 우리의 작은 욕심이, 우리의 인생을 감당할 수 없는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감독이 의도했던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의 남녀에 대한 성인식 차이의 불편함을 꼬집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작품의 배경상 옛날 시골마을이기 때문에 그냥 그 시대상을 적절히 녹여낸 표현 정도로 이해되었고, 현대 사회는 많은 것이 바뀐 듯, 거의 바뀌지 않았음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인 고요함 혹은 적막함은 제목인 '소리도 없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고요함 속에 무엇인가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감을 느끼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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