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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P.하루 2021. 4. 1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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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랜만에(?) 써낸 소설집. 여러 단편들이 수록되어있는데, 소설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고, 실제 이야기로 생각하기에는 허구적이고 몽환적인 그런 이야기들이 수록되어있다.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놓았으며, 짧지만 강렬하기에 순식간에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은 긴 그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내용은 '불편한 그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법도 한 내용들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하루키에게만은 관대한 그들이기에 실제 별로 논란은 없었던 듯하다. 그러한 자잘한 문제와는 별개로 꽤나 잘 읽히고, 실 생활에 밀접히 관련 있어 관심 가는 이야기들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돌베개에

 잠깐 스치듯 지나간 한 여인과의 일화를 곱씹는 작품. '단카'라는 일본식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어있는데, 사실 그 정취를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알게 모르게 죽음에 가까이 닿아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여성을 보자니, 어쩌면 내 한때도 저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작품 속에서의 상황은 생기지 않았지만) 사실 무엇을 전하려는지 막 와 닿지는 않은 이야기였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떠올리게 될 만한 분위기를 남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이해를 하긴 어려울 것 같다.

 

  • 크림

 '동심원이 다르면서 둘레는 존재하지 않는 원'이라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지만 전혀 떠오르지는 않았다. 작품 속 화자가 겪은 상황도 극적인 반전 없이 상황대로 흘러갔지만, 그 말미에 노인이 했던 말은 그 상황도 의미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제 자체도 성립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본 건, 어떤 원의 형태를 주변시를 통해서 보게 된다면, 찰나의 순간만큼은 그렇게도 보이지 않을까? 뭐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때론 그렇게 뜬그룸 잡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언령'이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마치 귀신에 홀린듯한 이야기, 사실 그것이 사실인지 착각인지 끝 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사자는 그 자신 뿐이었을 것이므로, 나도 이와는 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 홀린 듯 들렸던 음성과, 비 오고 천둥치 던 날의 신기루 같은 잔상. 뭐 사실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작 스스로도 그런 이야기가 진짜였단 걸 확실할 수는 없겠지만,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불확실한 부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나도 가끔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그 음들이 조화를 이뤄 엄청 좋은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것을 다시 표현하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위드 더 비틀스

 어린 시절 만났던 여자 친구의 오빠와의 짧은 만날을 통해 생겼던 일화를 담고 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와 재회하고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만, 매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야 후에라도 찝찝함이 남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보게 된 부분은 자신의 행동이 일부분 통제로 기억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고민해봤는데, 보통 과음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가? 한때 술을 진탕 마실 때 평소처럼 행동했는데 정작 나는 기억이 날아갔던 술자리가 몇 번 있다. 기억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뭐 오히려 타인들은 큰 위화감은 없었다는 것. 숨기는 게 많을수록 그런 것을 두려워하기 쉬워질 수 있겠지만, 뭐 그런 게 없다면 별 상관없지 않을까? 뭐 굳이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긴 할 것 같다. 

 

  • 요구르트 스왈로스 시집

솔직히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잘 읽히진 않았다. 뭐 느낀 점이라곤 특별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의 방식에 대해서 일부 공감한 것. 일본에서도 흑맥주는 비주류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한 취향이 주는 특별함에 대해서 고찰해 볼 수 있었다.

'패배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기를 관람한다는 것이 곧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같아서 흥미로우면서도, 우리나라의 많은 팀들도 이러한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육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뜬금없이 끝나버린 이야기. 못생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와 상관없이 나눌 수 있는 무언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나가서 못생긴 외모조차도 활용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난 그렇게까지 못생기진 않았다. 아마도?) 가면 위의 얼굴과 가면 아래의 얼굴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나도 이런저런 가치들을 창출해냈고, 그렇게 유지하며 살아가지만, 작풍에서의 '못생긴 여자'는 결국 그 모습조차도 어떤 가면이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뭐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이 삶의 방식이 가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나은 삶이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범죄는 나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껏 쌓아온 스스로의 가치가 무너져버린다. 어쩔 수 없는 결말이었겠지만,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주었다.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작품의 설정과 묘사의 현실성까지 현실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 발상에 감탄했던 이야기. 어찌 보면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화자가 원숭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지만, 그중에서 이름을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살짝 짜증 나는 피해를 주는 것. 순간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혹시 어느 료칸에 묶지 않았는가 한번 의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내용과 살짝 별개로, 동족과 달라져버려 보다 지성을 갖추게 된 존재는 얼마나 힘들까. 삶을 견뎌내 가며 원숭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또 그에 배척당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시나가와 원숭이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하다.

 

  • 일인칭 단수

슈트를 차려입은 조금 낯선 나는 과연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글이다.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비일상의 나. 그 본질은 물론 하나의 나라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타인들이 느끼기엔 그 정체성의 내밀함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끔 그런 기분과 멋을 즐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에 취해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는 것. 아마 화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안 그런 척, 멋진 척하고 다니지만 때론 그 민낯을 알아보는 사람을 마주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나는 항상 그 민낯을 밝히는 사람에 속했다. 괜히 뜨끔하게 되는 이야기 이기 도하지만, 뭐 어쩌면 누군가 나의 가공된 외면을 걷어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어떤 것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어느 한 타인은 나보다도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모습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일인칭 단수로써.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 옴니버스식 구성이지만, 뭔가 잠깐 하루키 그의 삶의 한 파편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작품은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겪었을 수도 있는 경험담에 가까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나의 바람일 수도, 혹은 그런 숨겨진 환상과도 같은 이야기를 독자가 발견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아 보였지만, 막상 각 개인 내적으로 숨겨진 이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뉘앙스를 전체적으로 풍기고 있다고 느낀다. 나라는 사람은 과연 타인에게 어떤 '일인칭 단수' 일까. 궁금하면서도, 대강은 어떤지 이미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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