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해 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사실 윤여정 배우가 저렇게 아카데미 상을 입상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어찌 보면 늘 보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이기도 했고, 작품 전체의 정서가 한국적 신파를 따라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뻔한 전개를 보여준 작품은 아니다. 당연히 예상했던 어떤 장치들이 사실은 별것 없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듯했다. 배우들의 감정선과 그들이 처한 상황들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어, 아련하면서도 먹먹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자아낸 듯하다. 미국 이민 1세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정서와 심정이 어떨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생활고로 인해 생기는 가정의 불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왜 제목이 미나리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남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색다른 여운을 남겨준 듯하다.
- 미나리
미나리 하면 미나리삼겹살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미나리의 생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결국 주인공 가족의 삶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논밭에서 살 수 없고, 여기저기 흩뿌려졌던 미나리와 같이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듯하다. 솔직히 말해 작품 내에서 미나리로 성공(?)하는 모습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말은 생각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인한 부족함을 배우들의 연기로 메꿨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작품에서 전달하는 미나리처럼 끈질긴 삶은 이민 1세대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과학기술과 사회제도의 발달로 평균적인 삶의 질은 올라갔으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빈자의 삶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가깝다. 그런 우리들은 결국에는 자라나는 삶이 아니라 견뎌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미나리라는 제목은 그런 삶 속에서 다들 고생하고 있다고 짧게나마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수컷 병아리
가장 언짢았던 내용이기도 했던, 작품 초반에 아버지가 아이에게 수컷 병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했던 말이 솔직히 불쾌했다. 수컷 병아리는 인간의 기준에서는 쓸모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빗대어 인간 남자들도 쓸모없이 지지 않도록 노력해한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어떤 나쁜 의도까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냥 작품 중에 장치로 사용된 대사로 보기에는 남편의 성격을 비추어 봤을 때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 불쾌함과는 별개로 사실 대한민국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미묘하게 당연시되고 있는 일부 남성들의 삶을 생각해보자면 풍자의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내가 과민반응인 것으로 해두고, 남녀불문 모든 소외받는 사람들이 그 자체로도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타의 아닌 자의로.
- 남자의 꿈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 자신을 잃어가던 남편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 응원받고 싶었겠으나, 솔직히 어리숙한 부분이 많이 느껴져 욕먹을 상황을 자처한 듯도 하다. 뭐 어쩄거나, 아버지도 결국은 사람이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어떤 꿈과 목표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쉽게 그리고 어려움 없이 이룰 수 있다면 바람직하겠으나,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이고 진 상태에서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다소 부족함 많은 도전이 될 수 있겠지만, 모든 아버지들의 꿈을 응원한다. 아무 생각 없이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하기보다는 그런 목표와 꿈이 있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게 느껴진다.
- 과잉보호
몸이 좋지 않던 아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한다. 요즘 어린아이들의 부모를 보자면 하나같이 과잉보호를 하고 있다. 물론 세상이 좀 더 흉흉해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솔직히 말해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해도 재수 없으면 나쁜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낀다. 작품 내에서 그런 모습을 다뤄준 것은 꽤 마음에 들었다. 아이를 아이로 머 루르 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과잉보호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지켜주기 위해했던 행동들이 결국 아이들을 망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 어른다운 어른
사회가 발전할수록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행태는 더욱 부각된다. 뭐 개인적으로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정신? 세대차이? 세대갈등? 모두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노인층의 과거 병폐로 인해 꼰대 혐오증을 극심하게 겪고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을 꼰대라고 치부하고 자신은 그저 쿨한 것이라는 쿨병을 양산하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내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할머니는 어른같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서구적 마인드로 무장된 아이의 인식에는 할머니의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런 할머니를 억지로 존중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 싫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아이가 보여주는 할머니를 향한 악의적 행동을 봤을 때 뭔가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참 중간이 어렵다.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그리고 어른들을 대해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문제다.
뭔가 개운한 마무리는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가족 간 갈등에 대한 디테일한 감정선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민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겪었을 고충이나 애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현대의 그들 후손은 선대가 이룬 것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통해 작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삶. 그것을 견디어 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조만간 미나리 삼겹살을 먹으러 가야겠다. 그 억셈을 느껴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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