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의 후속작. 조던 피터슨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젊은이의 정신적 멘토로써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그의 전작은 완독 하지 못했지만, 이번 책 '질서 너머'는 코로나 시대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관통하는 명문이 품은 메시지가 어떨지 궁금한 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 명성대로, 쉽게 다가가지 못한 심도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내면의 정신세계에서 한 장막을 거두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이제 장별로 짤막한 감상평과 개인적 해석을 남겨보고자 한다.
## 기존 제도나 창의적 변화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마라 ##
보수와 진보 그 사이 어딘가 우리가 원하는 답이 있다. 서로의 의견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사람 사이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이자 미덕인 것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러한 사실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양하게 분열되어있고, 대화를 단절시킨 체 자신이 가진 주장을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피터슨은 두 관점 모두 올바르고 필요한 일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대다수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며, 그를 위해서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전반적인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는 불합리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상태이다. 급속한 경제개발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하고, 강제로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급격한 진보의 후폭풍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한 세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 하고, 애석히 도 그것은 아마 우리 세대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중 바보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 보면 나는 미숙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비겁한 겁쟁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정의로움을 갈망하는 척 연기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충격의 파문이 가실 때쯤, 나는 이제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더욱 나은 삶을 긴 여정을 출발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뒤바꿀 진보적 혁신을 갈망하면서도 제자리에 서서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조소하던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그러한 지금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순간, 더 이곳에 내가 숨어있을 자리는 없다. 겁쟁이의 자리는 그 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도록 하자, 그리고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거머쥐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권력을 통한 사회변화를 주도해보고 싶다. 때로는 이 모든 방법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보는 언제나 행복하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
인류는 고대의 신화 그리고 영웅에게 언제나 열광해왔다. 신화 속의 인물은 비범하고,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 온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질서의 끝은 또 다른 혼돈의 시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모순적인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도 대부분의 신화적 이야기, 영웅담 그리고 실제 우리 생활들이 그러하다. (물론 애석히 도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서의 붕괴는 절. 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각 개인을 어느 정도 제한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실제로 어떻게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한계를 스스로 정해 둔다면, 명백히 그 한계만큼 에도 미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그러한 한계를 해제하고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행동해야 한다.
영웅의 대서사시에는 대부분 탄생-시련-극복의 흐름을 띤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는 깊게 다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까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목표-달성-새로운 목표-달성'의 흐름대로 새로운 성취를 이어나가는 것은 영웅의 삶의 방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흐름은 언제나 더 나은 곳을 향해 이어져야 한다. 때로는 선하지 못한 인간이 그런 목표를 이루는데 더 탁월함을 보이고, 그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다양한 부분들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동안 거대한 선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삶이 곧 각자에게 주어진 영웅적 대 서사시임을 명심하자. 나의 모든 시련은 결국 더욱 큰 성취를 거머쥐기 위해 일어난 일들임을 깨닫고 더욱더 많은 상상과 목표의 성취를 이루도록 노력해야겠다.
## 원치 않는 것을 안개 속에 묻어두지 마라 ##
태만과 기피 또한 죄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안갯속에 숨어있는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숨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숨겨둔 진실이 억지로 파헤쳐졌을 때 하나의 방어기제로서 우리는 화를 나게 된다. 문제는 다른 이와 소통하는 데에 있어서 무엇이 나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정확히 구분하여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또한 어떤 문제가 나 자신을 과민 반응하게 했는지 정확한 인과관계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매일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과 결합한 안갯속의 망령은 내 주변을 벗어나지도, 또 내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감정과 상황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상대가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신의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불쾌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러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에게나 나에게나 모두 힘든 일일이기에 적절한 수준을 찾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을 하도록 해야겠다.
##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
어려운 일은 누구든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라도 수행하는 것이 결국 그 자신을 이롭게 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또한 현재 자신이 대하기 어려운 일은 피하기 쉽기 마련이고, 그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후에 그로 인해 발목을 잡힐 가능성 또한 증가한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세트, 호루스와 같은 신들을 통해 서술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한 교훈을 전달해준다. 이는 이전 장에서 다루었던 영웅의 서사시를 통해 이야기된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상상과 목표 달성과도 관련된 이야기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떠한 방향성을 지닌 상태로 자연스럽게 끌리듯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며, 가능한 한 자발적으로 앞서 그곳을 향하고, 닥쳐온 시련과 방해물을 헤치고 나아가 는 것이 올바른 삶이며, 그 가치를 이루는 것이야 말로 가치 있는 삶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를 보자면 순탄치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에는 불평불만 가득한 체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에 급급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러한 크고 작은 시련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차지했고, 최고선을 향하면서 자신도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실제로 완전히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적어도 스스로 그런 지향점을 빨리 설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미래는 곧 잠재적 현재이며,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순간이라는 것에 큰 공감을 하며, 삶의 유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다.
##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마라 ##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때로는 부정을 저지르고, 눈감고 심지어는 그것에 무감각해지기까지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T/F 논의로 무의미한 논쟁을 반복한 사례는 인상 깊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모든 불편함이 사라질 때까지 그 짓거리를 반복할 텐가? 각 개인은 어떠한 문제건 의견을 표출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건설적이지 않고 퇴보를 반복할 때는 무분별한 소모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도덕적 우월성에 입각한 보여주기 식 행위를 일삼는 것이 만연한 현실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
막상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설령 그것이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내부고발자들의 미래는 너무도 참혹하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따돌림을 당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모든 징벌적 인사와 보복을 당하는 것을 보자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런데도, 적당한 수준의 올바른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행동 규칙을 확립하고, 그 기준에 맞게끔 조금이나마 환경을 바꿔나갈 수 있기에 언젠가 모두가 바른길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나 또한 꽤 반골적 기질이 강한 편이라 조직에 순응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 행동 기반과 기준이 대다수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믿음 정도는 있다. 때로는 그 길이 외롭고 힘들지만,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조금씩 발전하며 살아가 보고자 한다.
##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
이데올로기는 케케묵은 끝없는 논쟁의 씨앗이었다. 산업혁명의 부작용과 함께 찾아온 온 사회주의의 계보는 세계를 혼란의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대한민국 또한 그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희생당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또 사회주의자로부터 희생당한 많은 민중도 있었다. 물론 내가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기에 속단할 수 없지만, 이미 나는 이데올로기의 광기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논쟁은 좋은 흥밋거리가 되지만,그 부작용으로는 집단에 속함으로써 그 무리로부터 보호를 받는듯한 착각 속에 전염병처럼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문제를 인식하고 제어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 또한 그 이데올로기에 빠져 정의를 울부짖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정쟁보다 중요한 것은 실존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더라. 군중에 소속되어 정의를 실천하는 듯한 환상은 신기루와도 가깝다. 결국 못하고, 또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과도 같은 삶을 억지로 이끌려 나와 지속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그릇된 일부 종교와도 같이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 전체는 중요하고, 각 개인은 그 사회에 속에 있기에 전체주의적 사고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세분화하고 분리해 생각하고,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것이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은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고, 집단으로서의 해결책 없는 분란만을 일삼는 현실이 개탄스럽고 처참하다고 여겨지지만, 한동안이 광풍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일반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늘 그렇듯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일을 만들어내고, 그 자신에게도 과분한 양의 과업을 달성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뭐 그런 것도 좋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것들을 모두 다룰 능력을 지니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하나씩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게임 속에서 기술(기능 트리)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초심자의 영역에서 우리는 다양한 것을 알아가고 배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것들 모두를 최종단계까지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하나의 일(기능)에 노력을 투자하여 해결하면,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더 복합적이면서도, 정교한 수준의 다음 단계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면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당장 노력한 성과가 보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이 단기적 피드백이 빠른 일 [운동 혹은 게임] 과 같은 것에 열광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장기적이고 꾸준한 이야기를 함의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보상이 따르는 어려운 일들을 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수습 기간, 인턴, 초심자의 상황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 그 순간 익힌 습관이나 지식이 결국 자신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임을 이제는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당장 보상이 따라오는 일들에 더욱 집중해온 편이다. (운동 아님)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일에도 비교적 꾸준히 깊이 있는 지속 가능한 수행을 이어왔기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는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나쁜 것들은 올바른 방향을 향할 수 있도록 수정하는 것이 내게 남겨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 방 하나를 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꾸며보라 ##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간장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있으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저자도 실천하지 못하는 일부 문제들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뭐 어찌 됐건 내가 이해하기로 방을 꾸민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휴식을 위한 방점을 찍는 것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란 있는 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사실 나도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긴 하다. 당장 먹고살 여유조차 없는 이들이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솔직히 약간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몹시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러한 점에 착안하여, 일상의 공간이 되는 방을 예술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예술을 삶의 일부로 집어넣어 보라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
내가 예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저런 소재에 집중하다 보니, 다양한 문화, 예술적 산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흥미로워졌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에 묻어나기 시작한 듯하다. 물론 그 수준이 높지도 않고, 유명 작품이나 예술품을 본다고 하더라도 단편적인 이해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술품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어떤 사적인 감정의 파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를 바탕으로 예술을 자신만의 색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순간, 우리들의 삶은 예술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의 풍경이라는 것이 어딜 가나 산이 보이고, 도시화 및 구획화된 문명화의 잔류물이 흔히 펼쳐진 더한 느낌이 가득하다. 하지만 니체의 영원회귀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면서 장소, 비슷한 사건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절대성에 의해 모든 순간이 새로움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길을 가다 한눈을 팔 때가 있다. 약속에는 늦을 수 있겠지만, 가끔 그 방향성 없는 새로운 자극에 들뜰 수 있어 즐겁기도 하다.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뭐 결국 내가 즐거우면 된 게 아닐까?
##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
어릴 적에 느꼈던 아픔이나 트라우마를 성인이 된 이후에 재구성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루었다. 때로 우리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곤 한다. 그 자체가 겁이 나 항상 회피하고, 상황 자체를 피하는 성향을 띄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된 나는 크나큰 차이를 보인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과 육체적 기반이 닦여져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현실을 직시한 다음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게 된다면, 생각보다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님을 깨닫고 그 영원할 것만 같은 족쇄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해방과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도 더 원래 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야 그것을 빠르게 겪고 깨달으면서, 보통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러한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스스로 더 나아가지 못해 답보상태인 시기가 길었던 것 같다. 뭐 어찌 보면 결국 묶여있었던 게 되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그러한 상처를 딛고 한 층 더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리뭉실하고 주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문장화 된 자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객관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여 관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나 자신도 그러한 방법으로 내가 겪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제는 과거의 슬픔과 고통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느끼지만, 더 나아가 글쓰기를 통해 나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도전을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
많은 책에서 결국에 나아갈 방향으로서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다루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사랑이 존재하며, 그중 생각보다 많은 수가 뒤틀리고 기형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 그들을 결혼에 이르게 하는 어떤 확신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냉정하고도 차가운 현실 속에 그들의 열정과 사랑을 차갑게 식어가기 일쑤였다. 결국 각자의 본능 아래 빛을 잃어버린 사랑은 끝내 파국 향해 떠밀려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현실이지만 솔직히 '낭만'이라는 말에 대해서 작지 않은 환상을 품고 있는 편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현실이기에 반드시 낭만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들 결혼을 시작이 아닌 끝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나도 과거에는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몰랐기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듯하고, 이제는 결혼할 준비가 거의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항상 서로 협상하고 노력할 것. 그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오라 만난 연인관계는 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편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어느 한쪽만 노력하는 관계는 결국 끊어지기 마련이다.
## 분개하거나 거짓되거나 교만하지 마라 ##
어쩌면 내게는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자주 분개하는 편이었다. 분노에 휘둘린 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내게는 꽤 어려웠다. 결국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감정은 언제나 현상을 왜곡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때론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게끔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왜곡된 허상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평소 자기 객관화를 열심히 수행하면서, 나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편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런 성격이 자신을 다소 교만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그런 교만을 통제하기 위해 더 높은 이상적 이성을 만들어냄으로써 억제된 욕망과 본능에 의해 충동적인 감정이 발산되어버린 경우도 더러 있다. 결론적으로 크게 비대해진 감성과 이성으로 인해 발암 물질 날 없었던 시절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에야 적절한 감정의 해소를 통해 큰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나름대로 안정을 찾은 듯하다.
결국 성장. 나아가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라도 이상적 허상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고, 그를 바탕으로 허상 뒤에 숨어있는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
사람들의 삶은 고통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영역 한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고통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상태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헤쳐나가야 한다. 어차피 늘 함께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더 현명한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이 곧 감사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를 통해 얼마간의 해방감과 희열까지도 느껴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특별한 무언가로 바꾸는 태도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그러한 정해진 여정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듯 살아가지만, 그 짧은 찰나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여지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통, 어둠, 허무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필연적인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감사를 통해 원망을 없앤다면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전작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이 책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룬다는 어떤 한계를 보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가치관과 행동 양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요즘 한국 사회는 탈진 증후군으로 몸서리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상황에 맞게, 책으로 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마음 달램이나 투자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만 않은 것들을 다루는데 편중되어 있다. 결국 만한 리더나 멘토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한국에 그러한 리더가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조던 피터슨, 유발 하라리, 재러드 다이아몬드, 마이클 샌델과 같은 지식인들이 그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주고 있음을 느낀다.
스스로 삶을 어느 정도 살아보니, 책에 쓰인 많은 내용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었다. 다만 그 지식은 체계화되어 내 안에 내재화되어있지 않았던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앎'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 사람의 지식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빨리 이 책이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깨달음을 실천하는 데 있어 큰 전환점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이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지식을 통해 각 개인의 지혜를 함양하여, 최종적으로 최고선을 향한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변수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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