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경정신과 의사가,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개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복합적인 관계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찰하면서 기록한 일지 방식으로 기록된 책이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겠지만, 정말 딴 세상 이야기라고 여겨질 만한 사례집들이 수록되어있다. 개인적으로는, 난관에 봉착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는 다양한 사람들의 방법과, 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정말 좋은 내용에 좋은 전개 방식이었지만, 내겐 너무 씁쓸함이 많이 남은, 여운이 긴 그런 책이 되었다.
* 상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분에 대한 부재감. 사실 원래 없었던 능력이었다면 더 힘들어지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그들의 지각력을 잃었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결국 상실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결과로. 좋든 싫든 각자가 준비해놔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뭐.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물론 아직도 멀쩡히 잘 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도 한다. 그래도 결코 다시는 더 느끼고 싶지 않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뭐 결국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새로운 답을 찾겠지.
* 과잉
능력의 과잉이라는 건 긍정적인 활용법이 많기도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통제능력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뚜렛 증후군은 정말로 겪고 싶지 않은 질병이기도 하고, 한 개인이 어떻게 점차 사회성을 잃어가는지 알 수 있는 처참한 질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좀 신기한 경험도 있긴 하다. 후각의 과잉, 왜인지 모르겠지만, 쇠 비릿한 냄새, 꽃향기와 비슷한 냄새로, 좋은/나쁜 사람과 상황이 때때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을 당시였기에,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상 후각을 통해 사람들의 진심이라던가 속마음을 얼추 느낄 수 있었고, 미리미리 싫은 상황을 피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후에는 이상하리만큼 후각이 더 퇴화한 거 같다. 향에 엄청 민감한 편이었는데 너무 둔감해졌달까.. 물론 여전히 향은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느낀다.
* 이행
잃었던 능력의 복구라고도 볼 수 있고,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초월적인 영역으로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인상 깊은 장면은 없어서. '저게 되나?' 하고 말았던 부분. 기억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추상적이고, 왜곡되기 쉽기 때문에. 믿지는 않는다. 괜히 아스라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지만,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는 게 또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겠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 시절 그때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싶기도 하다.
* 단순함의 세계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다. 어차피 인지와 지각이라는 영역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이를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관계하는 속에 있어서는 서로의 허용된 영역만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대 사회는 '표준화'와 '일반화'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며, 그 부분들의 공유 감을 이뤄냈을 때 비로소 비로소 '사회화' 능력을 갖추었다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인류라는 종의 존속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개체 한 명 한 명에게는 과연 좋다고만 볼 수 있을까?. 책에 나온 쌍둥이 형제라던가 자폐아들에게는, 그들이 보는 그들 만의 세상이 있다. 다른 이들의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계도 해나 간다는 건 매우 오만한 생각이라고 느낀다. 물론 그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기본소양은 필요하겠지만, 정말 그들을 생각하고 '치료'한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줬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역시 각 개인은 사회라는 조직 앞에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여서. 역시 그럴 일은 없겠지.
다양한 사례들을 보며 나도, 참 이해받고 싶었고 공감받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해했고, 노력했다. 근데 그 결과 남은 건 역시, 좌절뿐인듯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포기하지도 사회와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 더 이상 기대하진 않으리라. 그래도 좀 더 많은 사람과, 상황을 경험해보고 싶다. 답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니까.
힘내라 나 자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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