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공연] 소나기

P.하루 2020. 11. 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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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극 - 소나기

 춤극 <소나기>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상연되었다. 동명의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약 소녀가 소설에서처럼 죽지 않고 단지 사라진 것이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하는 것에서 착안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소녀는 곧 순수와 동심을 상징하며,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변질된 자아와 과거의 순수가 마주하면서 스스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무성극으로 다소 특이한 연출을 시도했으나,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소나기 - 시놉시스


* 황순원의 <소나기>

 학창 시절 수험을 치르기 위해 배웠던 소설  <소나기> 사실 지금에 와서는 정확한 내용이 가물거릴 정도긴 하다. 개인의 자율적 해석과 감상보다 문제풀이를 위한 정해진 답을 주입하는 과정에서의 선명한 괴로움이 새겨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게는, 소설은 정말 순수하고 풋풋한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를 청년 세대의 순수의 종말에 대한 비극성으로 표현해내듯 하다. 이번 기회에 소설을 다시 읽어보면서 느낀 건 유년기의 순수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씁쓸함이었다. 

<춤극> 소나기 팜플렛


* 그들만의 리그 '예술'

 솔직히 말하자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와닿지가 않아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배포된 팸플릿을 통해 어렴풋이 추측했을 뿐이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예술은 직관적이고, 이해가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런 관점에서 현대미술이나 현대 예술은 너무 그들만의 리그로 넘어간듯하여 안타깝다. 물론 짧고 단편적인 내 견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어떤 영감과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 비로소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에 덧붙여 배우들의 춤사위도 통일되고 정돈되어있지 않고, 각자가 따로 노는듯한 느낌? 그 또한 의도한 부분이라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큰 아쉬움으로 남은 부분이었다. 물론 최근 해외 내한팀들의 단체 공연을 보다 보니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공연도 적어도 '아마추어'의 공식적 공연인데 이런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들이 과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았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무성극이지만 유일하게 한장면만은 음성이 존재한다. 웬 귀부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안녕하세요를 거듭 반복한다. 가장 임팩트 있고, 간결히 표현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하는 인사인 이 말은 결국 우리에게 '안녕'하기를 강권한다. 처음엔 그것을 거부하지만, 이내 우리는 그것을 따른다. 그것이 곧 이 세상의 힘이자 이치이므로, 그 굴종 후에는 자유의지는 박탈되어 그 굴레 속에서 힘이 다할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잃어감을 표현하여 섬뜩하기까지 했던 장면이었다.


* 물질에 대한 세속적 추구

 안녕하세요 이후, 행위의 대상이자 목적이 되는 '빛나는 구'가 주어진다. 이는 곳 '돈 혹은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모두가 그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집착한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신기루와도 같다. 그 때마침 다시 나타나는 소녀는 과거의 잃었던 순수와의 재회로 보이며, 소년은 소녀를 알아보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결국 둘의 재회하고, 손상된 자아를 복원하고 회복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한 장면으로 막이 끝난다. 
 우리도 모두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돈 돈 돈 그리고 또 돈.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또 어떤 것을 쫓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아니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할 만큼 중요한 가치인가? 설령 그렇다 한들 우린 그것을 원하는 만큼 거머쥘 수 있을까? 현명하고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산문화회관 - 중극장


 솔직히 1막을 지켜볼때까지만해도, 후회와 짜증이 섞여 들어왔다. 내가 무슨 예술을 본다고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스로 생각거리를 찾아내어 만끽할 수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지만, 어찌 됐건 결과가 좋으면 된 것이랄까.. 

 물론 전반적으로 허술한 공연이었다는 사실과 그 감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작품 자체가 순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의 어설픔과 새로운 도전을 가벼이 여겨서 되겠는가? 가격은 충분히 비쌌고 아깝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력과 도전 그리고 열정은 내 마음에도 작은 불씨 하나를 남겼고,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고 뜻깊은 하나의 작은 역사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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