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전시]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술의 전당

P.하루 2020. 12. 2. 12:00
반응형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전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연대별, 테마별로 정리하여 전시장을 꾸며놨다. 인상주의/후기 인상주의 화가로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마네, 고흐, 고갱, 세잔" 외에도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의 화가들과 작품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모네'를 가장 좋아하는 편인데, 사실 화풍으로만 비교하자면 후기로 갈수록 선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제외하면 잘 구분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비전문가의 입장) 화려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시기 작품의 특징인 듯하며,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상주의 -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 , <인상-해돋이>

  • 인상주의

  사실주의가 미술계를 이끌던 시절에는 무 조건적인 실제감을 최대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에 따라 실제 사물의 색, 느낌, 크기 등 그것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지상과제인 듯했다. 전기 인상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러한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비평가들로부터 강한 비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도기가 발생된 이유로는 어쩌면 사람들은 사실과 현실에 지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주의는 산업혁명과 맥을 함께한다. 기존의 체계가 무너지고 바뀌는 과정에서, 사실적임과 이상적임이 생각보다 모두에게 이롭지 않았다고 느껴질 만한 시기였다. 그래서 대중들은 비록 가짜이거나 살짝 현실과 동떨어지더라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전적으로 제멋대로인 내 생각이다)

모네에서 세잔까지

  • 모네

 전기 인상주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을 통해 인상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극심한 생활고로 힘들어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인상주의 화풍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유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수련>연작을 완성시키도 한다.

 모네에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이 <수련>연작이라는 작품이다. 총 300여 점 넘게 수련을 그려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수련을 계속 그려낸 결과 가지각색의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인상주의 화풍에 걸맞게 실제 수련을 세밀히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빠져드는 분위기는 이 작품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끔 한다.

<수련> 연작 _ 모네

  • 수련 연작

 앞서 말했듯 수련 연작은 모네가 부유해진(?) 다음에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사계절을 품은 수련을 통해서, 같지만 같지 않은, 끊임없이 시간을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한편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한 내용을 상영해주기도 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말년에는 저렇게 혼자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열정을 잃지 않고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쉽게도 촬영이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방에다 걸어두고 보고 싶은 작품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대사회에서 새로움과 더욱 강한 자극만을 찾고 있다. 때로는 반복되는 일상과 같은 당연한 시간들 속에서 새로움과 또 다른 모습을 찾는 자세를 지녀보는 것도 다른 방식의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기인상주의 <별이 빛나는 밤_고흐> . <생트 빅투아르 산_세잔>

  • 후기 인상주의

 인상주의가 고인물(?)이 되어 가면서, 이를 탈피하고자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다시 세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기본적인 느낌은 얼추 비슷하지만, 화가별로 조금씩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듯하다. 너무 많은 화가들이 있어 솔직히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전반적으로 선이 좀 더 날카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쯤 해서 체력이 방전(?) 되어가서 하나하나 세세히 눈과 머리에 담지 못하긴 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19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적 성향을 보인 듯하다. 

  확실히 명화(알만한 작품) 들이 많았던 탓인지,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미술사 자체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진을 못 찍는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허용했다면 얼마나 번잡스럽고 시끌벅적했을지 안 봐도 뻔하기에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미술사를 다루게 되었는데, 자료도 많이 찾아본 듯하다. 앎에는 끝이 없음을 느꼈고, 다음에 또 전시회를 가게 된다면 이런 지식(?)들을 바탕으로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봐도 되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