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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P.하루 2020. 12. 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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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칼럼니스트 허지웅의 에세이집.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집필된 책이다. 그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관심이 생겨 좀 찾아보니, 신랄한 비판과 함께 솔직하면서도 소신 있는 발언들로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그 역시도 악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따금 생성되는 루머들로 인해 그저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고 잊어버렸었다. 이번 책의 제목을 처음 본 느낌은 투병일기를 베이스로 한 자기 계발서 수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내공 담긴 깊이가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빠져들만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생사의 문턱을 넘어온 사람은 강하고 아름답다. 담백하면서도 덤덤하게, 그렇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투병 이전의 그를 잘 알지 못하기에 그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그 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내 삶에 태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그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면서 계속 좋은 작품을 써줬으면 좋겠는 생각이 들었다.

 

  • 결심과 결론

 우리는 '결과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향점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기에 이는 현대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함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와 별도로 그 과정에 대한 성찰과 영향을 축소시키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결심과 결론'으로 표현하여 알려주고 있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우린 그것에 구속되고 매몰될 수밖에 없다. '결심'도 목표지향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몹시 순간적이면서 유연하기도 하다. 그렇게 변화된 순간은 결국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결심의 끝에 이른 결론이 어떻게 되는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다시 내식대로 표현하려다 보니 영 어렵긴 하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와 닿았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과정의 연속선상 위에서 인생을 살아나간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라. 그게 무엇이 되었든. 

 

  • 용산참사

  사실 나는 크게 관심 가졌던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흔히 그렇듯 돈 때문에 생기는 문제, 다만 과잉진압 논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 솔직히 말해 철거민 시위의 본질에 있어 불순한 의도(돈을 더 받겠다는)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당시 정부와 경찰 그리고 검찰 등 모든 국가 권력이 단합해서 힘없는 개인들을 처참히 짓밟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대통령이 '꼼꼼하신 그분'이었기에 가능한 사건이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통은 몇 개인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고, 또 그것은 잊히기 마련이다.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 돈에 미친 정부의 개를 자처한 위정자들의 만행. 앞으로는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관련된 모든 분들 모두 지금은 잘 이겨내셨기를..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 피해의식

 가장 쓰리면서도, 마음을 후버파는 이야기였다. '피해의식' 어쩌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어쩌면 영원히 함께할지도 모를 그런 말. 내 삶은 꽤나 자주 불운했고, 구설수에 휘말렸으며, 결국 그로 인해 불행한 시기가 많았다. 스스로 선택한 잘못에 의해 생긴 일 50% 그리고 정말 재수가 없던 박복한 내 운명에 의해 생긴 일 50%. 사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도 날 괴롭히고 있다. 그냥 그게 편했다. '피해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래야 내 삶을 인정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또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인과의 마찰이 심해진 것은 결국 너도나도 '피해자'들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 모두 '피해자' 다.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내가 '피해자' 임을 이유로 무차별적인 자기 합리화를 지속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닉슨' 처럼 스스로 성공했음에도(비록 나랑 급이 다르긴 하지만) 스스로를 '열등감'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자기 삶을 합리화의 구덩이 속에 빠뜨려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지긋지긋한 이 불행은 일정해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나도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또 그래서 무던히 노력해보기도 했다. 그걸 포기한지는 3년정도 되었나? 물론 아직도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의 작태를 보자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뭔가 바꿔보려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이 있고,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이 책임질 것이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요지는, 어차피 사람은 변하지 않고, 그러려고조차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실체 없는 말로만 떠도는 것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 또한 나보다 앞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니 뭔가 마음 한 편이 편해진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나에게 좀 더 집중하자. 

 

  • 가면

 한결같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셈이다. 그렇지만 도무지 가면을 쓰는 일 엔 익숙해지지 않는다. 상대가 나보다 월등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만 가면을 쓰는 게 가능하다. 어색한 웃음. 비굴한 미소. 그리고 굽신거림 (그 와중에도 아부는 하지 못한다) 가면을 쓰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혹자는 나의 행동거지를 보고 부러워하거나, 닮고 싶다고 한다. 처음엔 순진한 마음으로 그 말을 믿었으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냥 가면을 통해 뱉어진 말의 부스러기 일뿐 이더라. 

 우직하고 꼿꼿하면, 결국 부러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결국엔 유연해야 한다. 때론 바닥에 닿을 듯 넘어갈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아닌 것도 맞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작가가 말하는 대로,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 결국 가면에 잡아먹혀버릴 것이다. 

 

  • 순백의 피해자

 피해자는 항상 무결해야한다. 또는 모두에게 통용될만한 이야기를 가진 '순수'한 피해자여야만 한다. 이는 익명이란 이름 뒤에 숨어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잣대이지만, 어느새 주류가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앞서 말했듯, 모든(아마도 99%)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객관적인 '피해자'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만든 기준을 통과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래야만 그들 기준에서 합리적인 선별이 완료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 누구도 진짜 '피해자' 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래서야, 자신이 진짜 그 당사자가 되어도 아무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지 않는다. 이게 바람직한 상황인가? 또 마땅한 결과인가?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넓은 숲을 바라볼 수 있으면 한다. 적어도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 때로는 침묵이 더 값질 때가 있는 것이다. 

 

  • 상처는 상처, 인생은 인생

 앞서 '피해의식' 부분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정말 내게 와 닿는 내용이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어찌 보면 다소 밋밋하고 인위적인 글귀로도 보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알아버려 더는 가볍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 '피해자' 일수도 '가해자' 일수도 있다.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 또한 스스로를 가엾이 여기며, 계속 무언가를 바꿔가며, 새로운 목표를 이뤄가며 살아왔지만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젠 '나 아프다고, 나 힘들었다고' 울고서 스스로를 파멸에 이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해를 가했던 이들을 용서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들을 향한 칼날을 거두어들이려 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한들, 나까지 나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남들이 내게 남긴 상처는 언젠가 낫는다. 하지만 스스로 헤짚어버린 상처는 아무래도 낫지가 않더라.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인생. 그러려니 하고 조금은 받아들여보려 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딱 좋은 시기에 읽은 것 같다. 썩 나쁜 상태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계속 궁지에 몰아넣던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그렇게 살아왔다. 남들 신경 쓰지 않는 척, 혼자 속앓이 하며 견뎌냈다. 이제는 그것을 인정해보려 한다. 그가 겪은 고통이 작게나마 내게 전해져 왔다. 너희는 나와 같이 되지 말라고. 다른 그 어떤 말들 보다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생사의 문턱을 넘어선 그였기에 더욱 와 닿는다. 그가 계속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또다시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노릇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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