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를 보고 지인과 이야기하다 추천받아서 보게 된 영화 <흑사회> 임달화, 양가휘, 고천락 주연의 범죄 드라마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무간도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잔인하면서 낭만이나, 미화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조폭영화와는 사뭇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 정도가 있었다. 옛날 영화이다 보니(막상 무간도가 더 빨리 개봉된 작품이다) 영상이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겨, 레트로 한 감성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악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 작품이다.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하나, 개인적으로는 무간도가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 조연들이 너무 많아 사실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주연 인물들에 대한 성격, 주위 환경, 등 다양한 장치들로 대조적인 인물 간의 캐릭터성을 확고히 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나라한 사실묘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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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떠는 사람 vs 솔직한 사람
작중 록과 따이디는 극명한 성격차이를 보인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인 척 하지만, 속내는 누구보다도 음험하고 냉정하게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록과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솔직하고 화려한 것을 즐기는 다혈질의 따이디. (인간의 온정이 보이는 면모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뭐 다 나쁜 놈들이 자기들끼리 세력다툼을 하는 꼴이어서 본 주제에 대한 생각의 결과가 일반인들과의 괴리감은 있겠지만 맥락은 비슷할 것 같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좋고 나쁨을 따지기 보단,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하는 편이다. 물론 그로 인해 관계에 있어 많은 장애가 생기기는 하지만, 억지로 본심을 숨기고, 위선 혹은 가식을 보이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뿐더러 거짓말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 (그동안 관계가 지속된다면)가 되면,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싫어해도 별 수 없고). 그래서인지 나는 위선이 두렵고, 가식이 무섭다. 그 이면에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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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실패
몹시 흥미롭게도, 이들의 회장 선출은 투표로 이뤄진다. 심지어 100여 년간 이어진 유서 깊은 전통이라고 한다. 배경이 되는 홍콩의 반환 이후 역사를 따져보면, 국가보다도 먼저 이룩한 민주주의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 실상은 부정선거, 인기투표, 직접적인 이해관계, 뇌물 등 공정성은 돋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흑 사회라는 이름 특징대로 표면상으로는 정당한 절차를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어떻게든 힘을 가진 자가 조직을 장악할 수 있으면 하라는 암묵적인 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취지에 걸맞게 따이디는 돈으로 매수하고, 힘으로 회유하는 등 거의 대놓고 힘을 과시하지만, 결국 사람 좋아 보이는 록과 그를 지지하는 주요 원로들과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작 이런 모습이 실제 민주주의의 과정들을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온갖 제도의 이론과 현실을 비교해볼 때, 이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영화 2편에서 이어지겠지만, 이들의 민주주의적 절차로 뽑아낸 그들의 대표가 어떤 인간인지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우리 사회와도 같아 쓴웃음이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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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또 배신
무간도의 배신은 배신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슬리면 끊임없이 속이고 짓밟는다. 혹여나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며, 끊임없이 서로를 속이는 장면이 더러 나온다. 저렇게 살면 어떤 마음일까 항상 궁금하다. 결국 상대가 내게 행한 행동과 그와 관련되어 느낀 감정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자신이 배신을 일삼는 자라면, 그 자신도 항상 배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삶을 견디는 것도 다른 의미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참 주변에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실제로 배신자들이 득시글 거리는 끔찍한 조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는 배신을 싫어한다. 내 신의를 지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배신이라는 행위의 파급력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배신의 정의를 몹시 축소시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신의를 져버리는 것 자체가 배신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선 이게 뭐지? 했었지만, 막상 글을 쓰고 정리하다 보니, 무간도와는 다른 의미로 복잡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사회라는 어느 범죄 집단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들도 본능에 따라 움직인 것이고, 일반 사람들 또한 그러한 본능과 욕망을 품을 수도 있고, 사회는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고전영화가 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러 오래된 영화라는 느낌은 들지만,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 아니 더욱 그들의 행태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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