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연극] 노예 이솝

P.하루 2021. 6. 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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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극 - 노예이솝

 다들 들어본 적 있을법한 이솝우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예 이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 극단 고춧가루 부대에서 작품을 다뤘으며 다소 풋풋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무대여서 괜히 내 마음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여 노예인 이솝이 어떻게 이솝우화를 퍼뜨렸는지, 또 스스로에게 닥친 시련들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20여 평도 안되어 보이는 공간에서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등 모두를 일사불란하게 행하는 모습이 정말인지 가슴 벅차오르는 장면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기대를 하고 감상한 작품은 아니었다. 또 생각보다 부각되는 실수라던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커다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리스 로마 신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신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다. 영웅적인 면모라던가 신화적 이야기가 가지는 멋있는 부분은 언제나 재미있게 들려왔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난 후 생각해보니, 그리스 신들만큼 막장인 존재들도 없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집트나 힌두의 신들 또한 그에 못지않은 막장성을 보여주지만, 제우스의 막장 행보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듯하다. 특히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을 몹시도 닮아있다.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는 어린아이 와도 같지만, 위험하게도 그들이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혹자는 이렇게 묘사된 신의 이야기가 사실은 고위 귀족 혹은 왕족들의 이야기라고도 말한다. 절대 권력으로 모든 것을 누리던 이들이 마치 신처럼 반인륜적인 행위를 일삼았고, 그러한 모습들이 차마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못하여 신화라는 방법을 차용해서 다루어졌다는 것. 물론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그리스 신들이 인간을 그리도 닮아있는 것을 이유로 들자면 그럴싸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노예 이솝> 작품 내에서도 그리스 신들은 정말 제멋대로로 나온다. 그런 모습들이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뭐 신이라는 존재를 언제나 좋아하지는 않았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때론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작은 존재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신을 미워했지만 결국 인간 사이의 신분제로 인해 생기는 일들이 더 비참했으므로, 굳이 신을 탓할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이솝우화

 선택받은 인간 이솝이 어찌하여 그런 우화를 퍼뜨리고 다녔는지에 대해선 사실 큰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 신탁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따져 들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다만 그런 핍박과 배척에도 선한 마음을 잃지 않은 그의 태도는 정말 바람직하고 본받을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퍼져나간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우리들도 그런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금도끼 은도끼, 토끼와 거북이, 양치기 소년, 개미와 베짱이, 여우와 두루미 등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가 더 대단한 것은 좋은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동물들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흥미를 돋으면서도, 정작 그 동물에 해당하는 인물상에게 이야기하더라도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그런 극의 서사를 바라볼 때 이야기의 흐름은 무난했다. 플롯 자체에서 크나큰 변화가 들어가지는 않았고, 또 공연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배우들의 연기가 오히려 더 감상하기 편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 따라 신경 쓸 것이 더욱 많아져서 연기를 하기에 쉽지 않았을 텐데도, 구슬땀을 흘려가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다.

 

  • 노예제도

 고대 그리스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심지어는 당대의 철학자나 지식인들 조차 그러한 사실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발언 중에는 노예와 여자는 성숙한 시민이 될 자질을 갖추지 못했고 그들은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스스로 바란다는 듯한 뉘앙스의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 그리스의 신분제는 철저히 폐쇄적으로 구성되었고 유지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 간의 긴 역사 동안 신분제의 평등이 이뤄지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말에서야 겨우 가능했던 일이었기에 크게 낯설지는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유사점으로 인해서인지 그리스와 우리나라 사람은 꽤나 많이 닮아있다. 업무상 그리스인들과 함께 일할 경우가 있는데 고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일하는 그들이지만 정작 내가 그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앞뒤가 꽤나 막힌 한국인을 볼 때 생기는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현대라고 해서 실질적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돈에 의해서 구분된 신분제는 여전하다고 느껴진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함께 많은 것을 바꿔가야 하는데, 정작 그들끼리 싸우고 헐뜯기 바쁘니 통탄할만한 일이다.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 운명에 순응하거나 혹은 거스르거나.

 작품에서 이솝은 그에게 주어진 노예라는 신분의 운명을 거스르긴 했지만, 정작 그는 신에게 선택받은 아이였기에 신의 사자의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불가지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주의이지만, 때로는 운명 일어나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자포자기하거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방관하지는 않는다. 물론 순간적으로 그런 충동에 빠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항상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나는 운명에 순응하기도 때로는 거스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작품 내에서의 인물들이나 또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자면 그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어느 순간 꺼져버린 불씨와도 같은 열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도 그들도 앞으로 각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끝자락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적어도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었으면 한다.

 

 작품성을 논하자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잘 전달된 듯하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하루 하후를 소비하며 살아갈 뿐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과가 없으면 노력하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건 포기하게 되고, 어려운 건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나는 충분히 못난 어른이었다. 그렇지만 열연해준 우리 청년 배우들 덕에 그런 나 자신을 조금을 일으켜볼 수 있었다. 보고 나서 이런저런 상념과 함께 앞으로 그런 극단을 꾸리고 싶다는 야망이 들었지만, 지금 이 시점이 되니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거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시도하려는 마음만큼은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심심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애썼다고.

모두 성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우리의 인생을 즐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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