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이상 등 9인 회를 모티브로 하여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현실과 혹독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도덕률 사이에서 번뇌하고 갈등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구성한 작품이다. 역시 창작극으로 여러 군데서 호평을 받았으며, 상황 변화에 따른 각 인물들의 감정선이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좋은 작품이었다. 특히 여자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BL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애초에 남자들은 뮤지컬을 잘 안 보긴 하더라) 뭐 그러한 요소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며, 크게 거부감 드는 정도도 아니었기에 재밌게 본 작품이었고, <팬레터>를 계기로 내가 다시 뮤지컬에 빠져들게 된 듯하다. 다시 보고 싶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진주 공연까지는 관람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 일제 강점기 말 문인들의 삶
1930년대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작한 후 문학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순수문학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바로 작품 중 '칠인회'로 표현되는 '구인회'였다. 일제가 폭정을 행하는데 순수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목소리 때문인지, 각자의 주관이나 문학 취향이 너무도 확고해서 인지 사실상 역사적으로 이렇다 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작품에서 묘사돼 듯 대부분의 문인들은 너무도 가난했다. 기본적으로 결핵을 안고 살아가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술'과 '여자'까지 좋아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기에 썩 탐탁지는 않지만,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김유정 또한 그런 부분에서는 여타 다른 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지 않았을까?
* 히카루
극 초반부만해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작품을 감상할 때 배경지식 없는 채로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탓에 더더욱 어렵기도 했다. 뭐 그래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인 '세훈'의 내면의 자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어 나아감을 느꼈다. 특히 히카루라는 캐릭터는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성격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거침없이 전진하는 그러한 캐릭터이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주 인격인 '세훈'을 억제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진'을 무리시켜서라도 문학작품들을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이 광기의 끝은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히 문학을 창작하고 완성시키는 것은 확실히 '생이 끝나도 영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은 이뤄진 것이 아닐까? 모든 게 파국으로 치닫고 나서는 히카루는 모든 죄악의 짐을 진 채 사라진다. 비극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배우 '김 허이라' 분께서 연기한 히카루는 몹시나 아름다웠다.
* 이중인격
스스로가 이중인격이라고 느껴진 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구분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이중인격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만 상황마다의 가면(페르소나)을 통해 나를 보호하는 하나의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 중 세훈과 히카루는 엄밀히 말하면 이중인격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욕망과 절제라는 극히 대비되는 인격을 지녔음에도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므로 이중인격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도 이처럼 극단적인 인격들을 지니고 있어서 이러한 행동들을 생각해 볼 때, 결국 보통의 경우에서 사람들은 본능의 충족을 위해 욕망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결국 '히카루'가 주도권을 지녔고, 그 욕망이 충족된 이후에야 '세훈'이 다시 주도권을 갖지 않았는가? 그러니 다들 적당히 욕망을 올. 바. 른. 방향으로 해소하며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억압은 강한 반동을 형성한다.
뮤지컬에 그렇게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팬레터>를 보면서 때때로 전율을 느꼈고, 그런 좋은 느낌을 통해 더 찾아보고 관람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인간의 억압된 욕망의 실현과 그 파국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는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보게끔 했다. 과거의 나는 항상 스스로를 억압해오기만 했었던 것 같고 (사실 지인들은 제 멋대로인 녀석으로 알고있겠지만..) 내 욕망을 충족을 등한시했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히카루는 정말인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해진이 그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뮤즈' 였음을 나 또한 공감한다.
"내 사랑이 죽었을 때 내 청춘도 죽었고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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