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뮤지컬] 팬 레터 - 부산문화회관

P.하루 2020. 10. 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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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팬레터

 김유정, 이상 등 9인 회를 모티브로 하여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현실과 혹독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도덕률 사이에서 번뇌하고 갈등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구성한 작품이다. 역시 창작극으로 여러 군데서 호평을 받았으며, 상황 변화에 따른 각 인물들의 감정선이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좋은 작품이었다. 특히 여자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BL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애초에 남자들은 뮤지컬을 잘 안 보긴 하더라) 뭐 그러한 요소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며, 크게 거부감 드는 정도도 아니었기에 재밌게 본 작품이었고, <팬레터>를 계기로 내가 다시 뮤지컬에 빠져들게 된 듯하다. 다시 보고 싶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진주 공연까지는 관람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 일제 강점기 말 문인들의 삶

 1930년대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작한 후 문학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순수문학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바로 작품 중 '칠인회'로 표현되는 '구인회'였다. 일제가 폭정을 행하는데 순수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목소리 때문인지, 각자의 주관이나 문학 취향이 너무도 확고해서 인지 사실상 역사적으로 이렇다 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작품에서 묘사돼 듯 대부분의 문인들은 너무도 가난했다. 기본적으로 결핵을 안고 살아가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술'과 '여자'까지 좋아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기에 썩 탐탁지는 않지만,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김유정 또한 그런 부분에서는 여타 다른 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지 않았을까?

팬 레터 - 김히어라

* 히카루

 극 초반부만해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작품을 감상할 때 배경지식 없는 채로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탓에 더더욱 어렵기도 했다. 뭐 그래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인 '세훈'의 내면의 자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어 나아감을 느꼈다. 특히 히카루라는 캐릭터는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성격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거침없이 전진하는 그러한 캐릭터이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주 인격인 '세훈'을 억제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진'을 무리시켜서라도 문학작품들을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이 광기의 끝은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히 문학을 창작하고 완성시키는 것은 확실히 '생이 끝나도 영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은 이뤄진 것이 아닐까? 모든 게 파국으로 치닫고 나서는 히카루는 모든 죄악의 짐을 진 채 사라진다. 비극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배우 '김 허이라' 분께서 연기한 히카루는 몹시나 아름다웠다. 

팬 레터 - 히카루

* 이중인격

 스스로가 이중인격이라고 느껴진 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구분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이중인격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만 상황마다의 가면(페르소나)을 통해 나를 보호하는 하나의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 중 세훈과 히카루는 엄밀히 말하면 이중인격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욕망과 절제라는 극히 대비되는 인격을 지녔음에도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므로 이중인격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도 이처럼 극단적인 인격들을 지니고 있어서 이러한 행동들을 생각해 볼 때, 결국 보통의 경우에서 사람들은 본능의 충족을 위해 욕망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결국 '히카루'가 주도권을 지녔고, 그 욕망이 충족된 이후에야 '세훈'이 다시 주도권을 갖지 않았는가? 그러니 다들 적당히 욕망을 올. 바. 른. 방향으로 해소하며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억압은 강한 반동을 형성한다. 

팬레터 - 뮤지컬

 뮤지컬에 그렇게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팬레터>를 보면서 때때로 전율을 느꼈고, 그런 좋은 느낌을 통해 더 찾아보고 관람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인간의 억압된 욕망의 실현과 그 파국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는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보게끔 했다. 과거의 나는 항상 스스로를 억압해오기만 했었던 것 같고 (사실 지인들은 제 멋대로인 녀석으로 알고있겠지만..) 내 욕망을 충족을 등한시했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히카루는 정말인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해진이 그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뮤즈' 였음을 나 또한 공감한다.

 

"내 사랑이 죽었을 때 내 청춘도 죽었고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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