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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김태권

P.하루 2020. 10. 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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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인간의 육식문화의 발달 및 역사 등을 소개 및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과 그 대한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육식문화에 대한 견해는 결국 '동물들에겐 미안하지만 맛있어서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너희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정도로 해석된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육식이 '맛있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 육식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대체육이 저렴한 가격에 공급된다면, 현재가 공장식 축산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돈인 듯하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기호의 차이

 사람은 각자가 선호하는 음식의 종류를 선택해서 먹는다. 물론 개개인의 기호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섭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볼 수 있다. 본인의 신념에 따라 현재의 공장식 축산 및 육식문화로 인한 환경파괴를 비판하면서 자발적으로 육식을 끊은 사람들이다. 이 채식주의자들 중에서도 개별적 기호는 또다시 나눠진다. 생선을 먹냐 안 먹냐, 유제품을 먹냐 안먹냐 하는 세부적인 항목들까지 정해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뭐 개인의 선택이니까 사실 별 관심 없지만 그들의 육식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동물을, 환경을, 건강을 위해서라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지만 그게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먹지 않는 것이 자유라면 먹는 것 또한 자유가 아닐까?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단지 기호의 차이 일뿐이니까.

 

 

* 음식 민주주의

 과거에 육식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왕이나 귀족들이야 대부분 진수성찬을 즐기면서 육식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겠지만 피지배계급인 소작인, 농민, 노예 등에게는 고깃국물이라도 먹으면 만족할 수 있는 상황에 가까웠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은 일단은 민주주의 사회에 진입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가 있고 그게 또 실제로 가능하다. 물론 돈이라는 제약이 걸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원하는 육식은 가능하다. 이런 식생활을 가능하도록 한 게 '공장식 축산'이다. 이를 통해 모두가 '육식'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일부 채식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러한 식생활이 위협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나도 이와 같은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하는 잔인하고 가혹한 방법들에 대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대안이 없는 상태이니, 동물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미래의 음식

 어쩌면 인간에게는 육식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끼는 미각적 데이터가 DNA 안에 내재화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세대를 거치면서 나름의 데이터를 보존한다. 역사적으로 육식의 보급화 이후에는 다시 이전의 식습관으로 돌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지금에 와서는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필연적 숙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는 육식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육식을 통해 성장해온 육체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만 하는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식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도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옳고 틀림이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인간을 위해서 살아간다. 특히 그 자신. 다른 동물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누가 무엇을 하든 잡아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한 다음에야 서로의 의견교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럴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먹는 내내 자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육식의 모럴’ 
목숨을 잃은 동물에 대한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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