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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 극단 골목길

P.하루 2020. 10. 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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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부산 시민회관에서 관람했다. 유명한 극단 중 하나인 골목길 극단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유명한 줄은 나중에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지방 순회공연을 하는 작품들 대다수는 수작인 경우가 많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매했다. 극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편이어서 그래서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로 본 듯하다. 이야기 흐름 자체는 크게 특별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배우분들의 연기가 출중해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좋았다. 이야기의 말미에 몹시 충격적인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많은 생각과 함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받긴 했으나 정도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 타락 혹은 변절

 다소 뻔한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빈곤한 능력 있는 사람은 부나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누구보다도 악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미 우리는 많은 드라마 혹은 영화 그리고 뉴스들을 통해서 타락해버린 많은 경우를 마주하고 살고 있다. 뭐 어쩌면 내가 그런 경우가 아니라서 덤덤하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환경이 마련된다면 누구든지 그렇게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쉽고도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위 성골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들 혹은 날 때부터 어마어마한 금수저들은 웬만해서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 결국 낙오되는 것은 새롭게 재편되어 순간적으로 무한한 권력과 부를 얻은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 뿐. 때때로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만약 내게 그런 행운이 찾아오더라도 지금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 사필귀정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괜히 이경영배우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어쩌면 최근에 정의구현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을 많이 봐서 인지도 모르겠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표현되는 '죄'는 악인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봤을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된다. 역시 현실에서 사필귀정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말들은 그저 쓰린 현실을 달래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사실 이제와 뭐 어찌 됐건 상관없나 싶기 하다. 나 자신도 포함하여 대부분은 불의롭고 억울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들을 기피하고 외면해왔다. 작은 힘이 모여야 하는데 그러긴커녕 약자끼리 헐뜯고 싸우고만 있는 형세니 너무나 멀기만 한 이야기인 듯하다. 그래도 언젠가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어떤 형태로도 벌을 받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후세에서라도

 

* 죽음

 연극은 재철의 자살로 끝이 난다. 그 장면이 너무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이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굳이 이 부분은 직접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겠다. 사실 극 중 내내 죽어버리지 저건 뭐하러 뻔뻔히 살아있나 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직접적으로 그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은 또 다른 불편감을 안겨다 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명백히 악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품을 통해 그 '죽음'과 대면하고 나니 가볍게 여길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재철로 인해 많은 죽음, 부조리함, 억울함 들이 생겼을 텐데.. 공리주의적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인간 감정의 복합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극 전체의 분위기는 잔잔하다.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들어간 배우분들의 애드립이라던가 일상적 희극과 같은 부분이 없었다면 엄청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잔잔한 흐름이 계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강아지를 연기하신 배우분이 시선강탈을 자주 해주셨다) 하지만 마지막에 생겨나는 거대한 파문은 그 날 내내 잠잠해지지 못했었다. 선과 악, 인간의 본능과 욕심, 농촌사회의 현실 그리고 죽음들.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던 작품이다. 순간의 선택에 의한 쾌감은 강렬하고 짜릿하지만 그 이후의 여운은 몹시도 길다. 처음을 잃어버릴 정도로.

 

"죄를 받았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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