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오페라] 카르멘 - 솔 오페라 단

P.하루 2020. 10. 1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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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 부산문화회관

 부산문화회관에서 솔오페라단의 '<카르멘>_조르주 비제'를 봤다. 생에 첫 오페라여서 걱정 반 기대 반이었지만 꽤나 재밌게 봤다. 뮤지컬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공연. 이번 공연의 주연 배우로는 카르멘 - 주세피나 피운티 (Giuseppina Piunti) / 에스카미요 - 엘리아 파비앙 (Elia Fabian) / 돈 호세 - 김지호로 공연을 위해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내한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이 함께하여 더욱 깊이 있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천천히 한 부분 부분의 노래를 즐기며 감상해야 하는 오페라의 특징이 나에겐 다소 버거운 감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곡 제목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하바네라 (Habanera) / 투우사의 노래 (Toreador song) / Carmen 서곡 : (Overture)들은 TV 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다들 들어 봤을 법한 노래여서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카르멘 - 무대

* 소설 카르멘과의 차이

소설 <카르멘>에서는 제삼자의 시선을 통해서 카르멘-돈 호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해 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서술되고, 액자식 구성의 관찰자 시점으로 인해 각 캐릭터 내면의 흐름이 잘 묘사되지 않았다고 하면, '오페라 <카르멘>에서는 카르멘- 돈 호세의 두 인물의 관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전개로 미묘히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페라 <카르멘>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극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서로의 오해와 집착 그리고 상황에 의해 서로에게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내 경우엔 어떠했는지 생각해보니 바로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되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때로는 글보다 직접적으로 시각화하여 표현된 작품이 더 좋게 느껴지는 듯하다.

 

* 카르멘과 돈 호세의 사랑

돈 호세는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인생 망친 남자라고 볼 수 있다. 거창하진 않았지만 군인으로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는데도 그녀의 유혹에 휘둘려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제넘은 과분한 사랑이 아니었다 싶다. '미카엘라'라는 약혼녀가 있었음에도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간 모습이 조금 한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매력적인 이성이 날 유혹하면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무조건 다단계/보험/종교일 것이다.) 강렬했던 사랑은 지나친 집착으로 변해 버렸고. 돈 호세의 의처증(?)으로 인해서 그 속도는 가속화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작품 중에서는 직접적으로 왜 그들의 관계가 어긋났는지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카르멘에게 쩔쩔매는 돈 호세의 이야기가 왠지 남일 같지 만은 않았다.

카르멘 - 주세피나 피운티

* 카르멘의 변심

그렇다면 왜 카르멘은 저리도 변덕을 부렸던 것일까. 돈 호세의 귀대를 방해하고, 자신의 악행에 가담시키고, 심지어 나중에는 떠나버리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자신의 매력에 자신감이 넘쳐나서인지 카르멘의 성격은 안하무인에 제 멋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뭐 사실 남자라면 줄을 서있다시피 한 상태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카르멘은 나중에 나타난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투우 경기가 열리던 어느 날 찾아온 돈 호세의 마지막 구애를 거절하고 결국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면서 작품은 마무리된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당당히 자유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돈 호세의 집착이 둘 사이를 망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모든 기반을 잃게 한 사람이 바로 카르멘이라는 사실도 분명 영향을 끼쳤겠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감내하지 못하고 둘의 관계까지 망쳐버린 부분이 안타까웠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돈 호세의 후회와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카르멘 - 티켓

* 여권 신장

작품의 시대적 배경상 여권이 정상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혹자는 돈 호세에게 죽임을 당하는 카르멘을 보고 '데이트 폭력' 이라고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물론 돈 호세가 결과적으로 나빴고 분명 살인과 폭력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돈 호세의 인생을 망쳐지는 것에 있어 카르멘의 책임이 꽤나 크다고 할 수 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각 개인이 하고자 한다면 남녀 성별과 무관하게 대부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편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한 솔오페라단의 제작진들을 둘러보면 여성분들이 더 많다. 사실 나도 문화계의 남녀차별이 어느 정도로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솔오페라단이 이러한 구성을 띄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각한다. 더욱이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실력까지 겸비하신 분들이니 능력 또한 인정받으신 분들임에 틀림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남자니까', '여자니까' 하는 수식어 없이 모두가 능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싶다. 물론 이와 함께 연인이나 부부간에 발생할 수 있는 평등함도 함께 왔으면 한다.

카르멘 - 커튼 콜

오페라의 특성상 다소 루즈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만큼 나의 성격이 엄청 급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줬다. 좀 더 느긋한 마음을 지니고 차분히 연주와 노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연습해봐야겠다. 앞서 언급한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카르멘-Overture와 같이 이미 친숙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노래들을 재발견하는 것이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예술적 식견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발견이 큰 행복을 주는 요소가 됨을 알게 되었다. 음악적 평가라던가 연출의 우수함 같은 건 잘 모르기에 마냥 다 좋게만 보였다. 이렇게 오페라 <카르멘>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보다 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는 귀중한 감상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사랑은 다루기 힘든 새와 같아서,
아무도 길들일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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