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공연

[공연] 호두까기 인형 - 연해주 마린스키 극장

P.하루 2022. 4. 4. 19:19
반응형
연해주 마린스키 극장
 
 러시아에 온 지 어언 6개월. 처음으로 공연 감상에 도전하여 보게 된 작품. 그 유명한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발레 공연으로 딱히 사전 준비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동화를 한번 읽어보고 갔다. 뭐 동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 파티에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인형이 사실은 어느 한 왕자님이 저주받아 그렇게 되었던 것이며, 호두까기 인형을 도와 쥐 대왕(?)을 물리치고 나니 사실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였고, 구해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왕국으로 데려가 이런 저건 진귀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다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결말은 아.. 꿈이고요) 발레 공연은 차이콥스키가 동화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해낸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보는 발레공연이었지만,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꽤 재미를 돋구는 부분이 많았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따로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눈으로 열심히 공연을 쫓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공연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그렇게 나름대로 재밌었던 공연이었다. 의외로 들어본 음악들이 많아 '아이게 여긴 거였어?' 했던 게 많아 의외로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아무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 러시아에서의 발레
러시아가 처음부터 발레의 본고장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은 원한다면 아무나 볼 수 있지만(개인의 취향에 의해 보지 않겠지만..) 발레는 전통적으로는 귀족들의 문화였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에 의해 갈 곳 잃은 무용수들이 러시아로 망명을 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발레의 종주국(?)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로서도 왕정의 붕괴나 볼셰비키 혁명을 겪으면서 그러한 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차이콥스키의 역작들로 인해 명실상부 발레 종주국(?)의 이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체감해본 느낌으로는 발레는 러시아인들에겐 어느 정도 국민적인 문화생활로 자리 잡은 듯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발레 공연을 관람하러 와서 즐기고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관람 매너가 딱히 좋지는 않은 것이 함정...) 기회가 되면 백조의 호수도 보고 싶지만, 한동안은 기약이 없는 듯하다.
 
  • 인간 신체의 위대함과 예술은 고난을 먹고 자라난다.
 공연을 보는 내내 무용수들의 발을 집중해서 봤다. 옛날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발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온통 물집투성이에 발톱은 다 망가져 있는 그런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었다. 그런 인내의 시간을 감내하여 그들은 발끝으로 설 수 있게 되었고, 점프까지 할 수 있게 되었을 테디.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각자가 가진 역량의 크기는 천차만별이겠지만, 크기와 상관없이 그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한순간,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길 원한다. 조금은 나태해진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하며, 하루 또 하루 정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그냥 그 몸짓이나 발동작 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감상도 들었다.
 
  • 러-우 사태와 예술 그리고 인간
 다들 알겠지만, 지금 유럽은 전쟁 같은 진통을 겪고 있다. 뭐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외지인으로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은 지켜졌으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작금의 사태는 정말 씁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이런 사태가 진정되길 바랄 뿐이다. 그와 별개로 같은 나라 반대편에서는 평화롭게 발레공연을 본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사실 뭐 당장 코앞에 위험이 닥치지 않고서야 내 일인가 하고 느낄 일이 있겠으리 없겠지만,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적 나도 공연이나 봐놓고서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뭐, 사실 혼자 유난 떠는 것밖에 안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위선이 될지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한 개인의 의지와 행동이 무엇인가를 폭발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같은 것은 신화 속의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기보단, 그냥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두서없는 단어의 나열이었겠지만, 어찌 됐건 하루빨리 사태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호두까기인형 - 커튼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앞으로도 많은 시도를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주로 오페라, 발레, 뮤지컬 위주의 공연이다 보니, 크게 신경 쓸 만한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혼자서는 택시 타고 왔다 갔다 하기에 만만한 거리와 비용은 아니라는 것이 꽤 부담이 되긴 했다 (위험한 것은 별개의 문제). 작품 자체에서 무언가 느낀 것이 많다기보다는, 예술공연이라는 것을 매개로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되었던 경험이었다. 사실 뭐 무엇으로부터 어떤 것을 느끼든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가치 있고 재밌는 일이 아니겠는가? 머나먼 타국에서 느끼는 예술을 통한 정취는 또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잡설이 길었지만, 머지않아 다시 다른 공연을 보기 위해 조만간 다시 들릴 것으로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