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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작별인사 - 김영하

P.하루 2022. 7. 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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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폈다. 이런저런 핑계와 함께 어느덧 흥미를 잃어버린 일이 되었던 독서를 내친김에 시작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설렘과 함께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담백한 문체가 썩 마음에 든다. 이번 작품은 휴머노이드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니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초반부에 이야기 전반적인 단서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어갔다가, 이내 '아 맞다 이거!' 하게 되는 부분들이 다수 있었다. 바로 그런 것들이 김영하 작품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작위적이지 않게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의 이야기엔 항상 철학이 담겨있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사유 같은 것이랄까? 작품 중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을 빌려 풀어낸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 맞이할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위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상황이기에 참으로 부러운 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무엇이 인간을 구분 짓게 하는가

 작품 초반부에는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던 휴머노이드가 등장한다. 외견상 그리고 대사활동까지도 구현해놓은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인간과 구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등록제를 통해서 애초에 존재를 규정하게 되었지만, 제도라는 게 언제나 허점이 존재하기에 작품 내에서 처럼 무등록자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라고 믿고 자라왔으며, 인간의 마음까지도 유사하게 구현해놓았다는 설정으로 되어있다. 자신이 휴머노이드임을 처음으로 지각한 그 순간. 어찌 미치지 않고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들이 결국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러한 최악의 상황이 와도 스스로 붕괴하지 않도록 관리되고 있는 하나의 안전장치 일까? 어쩌면 인간에게도 그와 같은 안전장치가 비슷하게 적용되어있지는 않을까? 아니, 어쩌면 인간은 그런 혹독한 현실에 맞닥뜨릴 때면 스스로 정신을 붕괴시키는 형태로 진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답은 없지만 뭐 그러면 어떤가? 재밌으면 됐지.

* 마음이 깃드는 곳

 결국 휴머노이드들은 정신을 네트워크에 이식하여 군체를 이루며 끝끝내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들은 마음을 가지지 못했기에 인간다움이 결여되어있는 것으로 나온다. (로봇이니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 마음 혹은 영혼이라는 부분이라면, 그것 마저도 구현해놓은 주인공은 인간으로 분류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작품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마음이라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있다. 육체를 버린 철수가 그 안에서도 사유하고 존재하며 어떠한 감정의 형태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 비단 어떠한 신경들의 전기적인 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념적인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마저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과연 인간 본연의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뭐 결국 그러한 결과에 따라 작품 내에서의 인류는 멸망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지척에 다가와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인류 멸망 시나리오

과연 인류는 어떻게 멸망할까? 디스토피아를 즐기는 내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객관적인 기대 이상으로 포장해왔다. 결국은 지구에 사는 유기체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스스로를 언제나 과신해왔고 결국은 그 길에 끝에 무방비하게 도달하게 된다. 어쩌면 흔해빠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속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요즘 세계정세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고있자면, 정말로 인류의 멸망이 머지않은 듯해 보인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와 러-우 사태로 촉발된 탈세계화 정책기조는 인류의 갈등을 크게 심화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핵전쟁의 전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핵겨울이 오면 지구온난화는 잡을 수 있겠다) 세계가 협력하여 해결할 범지구적 문제가 산재해있음에도, 인류는 현재 각자도생의 노선을 유지 중에 있다. 이러한 미온적인 태도의 결과로 멸망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더 이상 기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작품에서는 휴머노이드에 귀의하거나  스스로 파멸을 향해가는 인류를 보여주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쾌락이 인간을 지배하는데 얼마나 좋은 수단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이는 이미 우리가 당면해있는 과제라고 여겨진다. 뭐 생각해보면 인류의 생존은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들에 대해서는 이로운 일이 것이라 여겨진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솔직히.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게 우리는 멸망을 향해 오늘 하루도 한 발짝 나아가고 마는 것이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아서 클라크의 명언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다양한 형태의 팀으로 활용되는 문구이지만, 이렇게 일반 소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재미있었다. 미래를 또 어떠한 과학적 부산물이 마법처럼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가상현실세계를 꿈꿔왔던 나에게는 몹시 기다려지는 일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본 작품에서와 같이 인류의 멸망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이 두렵다고 해서 무작정 피하기만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인간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깊이 있는 고찰이었다. 인간을 구분 짓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발달한 미래사회 그리고 환경이 지금과는 크게 바뀌어 있을 그런 미래라는 세상이 조금은 두렵긴 하지만 인류의 집단 지성을 믿어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로 마무리하며 이만 마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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