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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 - 크리스토퍼 놀란

P.하루 2023. 8. 1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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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름만으로도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크리스토퍼 놀런의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촬영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진짜 핵을 터뜨리는 장면을 만들어 내면 어쩌나?'라는 농담 섞인 우려를 일으킬 정도로 파급력이 굉장했다. 영화의 감상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완벽했다'라고, 생각했다. 한 천재의 뛰어남. 그 이면에 가려진 평범함. 아니 어쩌면 결핍일지도 모르는 그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또는 영화 등 많은 매체를 통해 오펜하이머. 그의 인생을 그려내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논란의 '오펜하이머'는 개인적으로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천재. 그러나 결국 한 인간
몇 가지 눈살 찌푸려지는 작품 평을 보았다. "작위적인 노출 장면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뭐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이 작품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작품의 가치를 드높이게 된 장치라고 생각한다. 논란은 결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신격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서의 결함을 강조하며, 그 또한 결국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대개 생각한다. "천재들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그들 또한 결국 한 인간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그 천재성에 가려진 인격적인 이면은 평범하거나, 오히려 더욱 커다란 결핍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눈살 찌푸려지는 그의 치부가,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런 모습을 옹호한다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도 결국 하나의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결코 한 인간으로서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언제나 진실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비록 때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나 또한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순수과학의 비애
일단은 나 또한 한 사람의 공학도이다. 아니, 어쩌면 단지 회사원일 뿐이다. 크든 작든 '돈'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현실을 택한 비겁한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뭐 따지고 보면, 자신의 한계를 명백히 이해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빠르게 선택한 현실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두가 길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자연과학은 돈과 권력 그리고 정치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이다. 물론 그것을 공부하는 학자들마저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거의 멸시에 가까운 취급을 당하는 것이 자연과학이다. 평소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가, 돈과 이슈 거리를 가져오면 잠깐 빤짝거리다가 그 빛을 잃어가는 가련한 빛 덩이. 뭐 어찌 됐든 외국에서의 대접은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역사라는 큰 흐름에 이름 한 번 새기기는 했으니 말이다. 작 중 물리학자들은 누군가의 필요로 움직여졌다가, 그 쓸모를 잃으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그런데도, 세상의 불빛을 등진 채, 스스로가 가진 지적인 열망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순수과학에 매진하는 학자들을 보면 경외심이 깃든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들의 자신들의 몸을 불태우지 않고도 세상을 밝힐 힘과 믿음을 전해줬으면 한다. 모두가.
  • 인간 목숨의 값어치
오펜하이머는 사랑하는 조국 병사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위한 개발, 그리고 그 결정에 관여했다. 어쩌면 어떤 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의 미친 과학자처럼 자신의 과학적 그리고 실험적 업적을 위해 더 많은 일본인을 죽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론적인 계산이 만들어 낸 현실은 전쟁에서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 또한 결국 한 인간이었기에, 자신의 선택과 성공이 불러온 재앙 같은 현실은 깨닫고는 괴로워했고,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분개했던 부분은, 전쟁 영웅처럼 떠받들어지던 그의 존재가 결국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행한 행위들이 결코 옳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필요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강대국들이 인류를 말살시킬 수 있는 병기를 확인하고, 보유함으로써 최악을 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자면, 그것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종'이라면,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에 멸종당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이기에, 일본에서 그렇게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피해 유족들이 알게 된다면 분개할 일이겠지만, 국가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 국민들이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가해자인 모순적인 존재이다. 한번은 출장차 히로시마의 원폭이 투하 지점에 설립된 평화 기념공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곳에 방문한 이들의 온도 차는 상당한 것이 느껴졌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희생양 혹은 피해자로 자처하며, 비극적 역사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어떤 일본인들은 타국의 국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했다는 것을 떠올리자면, 그들의 행동이 역겹게까지 느껴졌다. 반면, 그곳을 찾은 많은 서양인은 마치 승전의 역사를 되새기듯 관광지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주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모든 인간의 목숨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각 개인에게 있어, 어떤 누군가의 목숨은 '우리'의 목숨보다 값지지 않다고 느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 결국 정치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버려진다. 인류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결국 무력이라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사용된다. 생각해 보면, 역사에 길이 남은 악인들은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에 비추어 보면, 다수의 흑막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통해 지탄받는 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작 중 스트로스가 말한 내용이 참으로 와닿았다. "권력은 그늘에 숨겨져 있다." 정확한 단어 선택까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결국 숨겨진 몇몇에 의해, 그리고 몇몇을 위해 절대다수가 희생되는 구조이다. 굳이 비율로 논하자면 상위 0.001% 이내에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천재는 그 권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어떤 권력자들은 그 이름과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호의호식하며 살아간다. 참으로 엿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더 킹"에서 정우성 배우가 작 중에서 말한 "역사적으로 흘러가듯 가~" 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것이 역사고, 그것이 정치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위 정치질을 하며 빠르게 승진하는 이들을 보고 시기하면서도, 정작 자신 또한 학연, 혈연, 지연, 인연에 이끌려 살아가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자신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전 국민의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니.. 결국 이것이 현실이고, 곧 역사가 되어버리는 게 당연할지도.
 
 정말 가볍게 지나간 장면이지만, 한 권력자가 원폭 투하 지점을 정하면서 교토를 제외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그는 교토는 '일본의 역사적인 도시'라며 후보군에서 제외하지만, 정작 그 이유는 자기 추억의 한 페이지가 피로 뒤덮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애국심, 국가, 정의를 외치는 자들의 실제 행태는 정말 별 볼 일 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어쩌면 지금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요즘 한국을 보면 세기말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자신들의 세상이 이미 망가져 버린 일부가 날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일부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수록 각 개인은 서로를 미워하고, 고립시키는 데 더욱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자신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 재앙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지금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껴진다. 나 또한 그 불특정 다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어쩌겠는가.

끝으로, 작품의 말미에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기억 속 대화가 인상 깊었다. 오펜하이머는 '이미 종말을 향한 연쇄 폭발이 결국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데, 작금의 현실이 그것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이제 와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는 않는 씁쓸한 상황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시간가량의 상영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인류와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기에, 이 작품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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